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러스 루이스 사장은 ‘엔론 스캔들’ 후 “세계적 기업들의 권력이 정부와 버금가는 시대가 됐다”며 “만약 헌법을 다시 쓴다면 대기업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조항을 집어넣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언론은 햇볕 아래서 일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엄격히 감시해왔지만 문 뒤에서 일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도 했다.
미국의 ‘비주류 지식인’이었던 허버트 실러(2000년 사망)는 좀더 신랄하다.
그는 96년 출간한 ‘정보 불평등’에서 “사회적 조직망이 쓸모 없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이 망을 꾸준히 해체시켜 사회위기를 심화시킨 주범이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움직임은 경쟁과 효율 일변도로 치달아온 다국적기업 주도의 ‘세계화’가 공존의 윤리를 외면해온 점을 생각할 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면 현재 한국사회에도 이런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기업도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투명성의 문제’를 안고 있고 지배구조문제도 충분히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기업이 정당한 지적이나 정보전달에조차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행태도 썩 개운치는 않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자. 정부, 정치권, 기업 가운데 그나마 어느 부문이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도가 클까. 경제계가 지닌 모순과 한계가 정치권이나 정부보다 더 심각한 수준일까.
역학관계도 그렇다. 권력집단의 입맛에 따라 ‘빅딜’이라는 반(反)시장적 기업재편성이 이뤄지고 법과 개혁의 이름 아래 행정부의 칼자루가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나라. 대통령이나 경제각료가 기업인을 불러모아 ‘훈시’를 하면 입도 뻥긋 못하고 경청해야 하는 나라. 정부가 외국기업은 마음껏 뛰게 하면서 국내 대기업에는 이런저런 족쇄를 채워놓는 나라. 한국사회의 현주소는 아직 여기에 머물러 있다.
22일 열릴 전경련 총회에서 발표될 ‘사회 각계에 바라는 제언’은 정부-정치권과 재계 관계의 재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재계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지는 않지만 △불법정치자금 제공 중단 △대선 과정에서의 경제논리 촉구 △기업윤리 확립을 위한 자정노력까지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명분으로 경제계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을 높이기에 앞서 기업이 외부의 쓸데없는 눈치를 안 보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심리적 뒷받침을 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런 바탕 위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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