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원칙 대로 풀어가야 한다. 철도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에 노사간에 협의가 다 끝났다. 과거 고속도로에 비해 철도에 대한 투자가 적었던 만큼 투자를 늘리고 경영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 등이 합의된 부분이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방법론에 대한 논의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노조측의 입장이 자꾸 바뀌어 어려움이 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공적독점이 사적독점 으로 바뀔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철도 민영화 문제는 고속도로와 똑같은 것이다. 고속도로의 건설이나 유지보수는 국가가 하고 그 위를 달리는 것은 민간이 운영한다. 철도도 마찬가지로 선로나 설비는 국가가 담당하고 그 위를 달리는 것은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 민영화를 정확히 말하면 운영부분의 민영화, 구조조정이다. 공적독점에서 사적독점으로 넘어갈 때는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그간 이런 내용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발전노조 파업사태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심지어 여당 의원조차 민영화에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전력사업 부문도 오래 전부터 합의하고 개정법을 마련해온 것이다. 정권 말기가 되니까 노조가 버텨보면 어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여기서 현 정부가 후퇴하거나 물러설 수는 없다.
-최근 전경련은 정치권의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부총리는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뒤 선거공영제를 전제로 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쓰자고 제안해 화제가 됐다. 가능하다고 보는지.
법인세의 일부를 정치권에 주더라도 제발 정치자금으로부터 해방시켜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가 상당히 강하다. 1999년 기획예산위원장 시절 이미 법인세의 일부를 써서 선거공용제를 하자고 국회에서 발언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각종 게이트다 세풍이다 하는 것들이 모두 정치자금에서 비롯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화두 를 던진 것이다. 나머지는 정치권에서 알아서 할 몫이다.
-법인세를 정치자금으로 사용한다면 납세자들의 반발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중국이 뒤쫓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몇 년은 한국경제에 정말 중요한 시기다. 기업들이 정치자금 문제에서 해방돼 경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과 정부가 할 일이다. 기업이 많이 투명해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보험금 을 누구에게, 얼마나 줘야할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올해 경제운용계획에서 정부는 4% 이상 을 성장률 전망치로 제시했다. 최근 국내외 연구기관이나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5∼6%까지 앞다퉈 올려잡고 있는데.
경제가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가 경제 전망치를 바꿀 때는 아니다. 특히 전년동기대비 10.2%나 늘어난 1월 산업생산은 설효과, 작년말 현대자동차 파업 등의 영향으로 착시효과 가 있어 실제로는 5∼6% 정도로 봐야 한다. 또 수출이 회복되는 기미도 분명하지 않아 너무 과대평가할 때는 아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수출 투자 소비가 균형을 이루면서 잠재성장률 수준인 5%를 회복할 것이다.
-일부 부문에서는 이미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하반기쯤에는 한국 정부가 긴축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외국 기관의 예측도 나왔다.
미국 경기의 회복이 긍정적이라는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V자형 회복인지 다시 한번 하강기를 겪는 W자형 회복인지 논란이 있다. 이밖에도 일본경제 위기, 미국의 대테러전쟁 확대여부 등 변수가 많아 냉정하게 봐야한다. 선거를 고려한 경기과열론이 일부에서 제기되지만 지난번 대선이 있던 1997년과 차이점이 있다. 당시에는 핵심 금융정책, 기업정책 관련 법개정을 선거를 앞두고 처리했지만 이번에는 주요 법안을 이미 작년에 대부분 처리해 경기를 과도하게 부추길 가능성이 없다. 올해 정부는 아파트와 전월세 가격에만 집중하면 된다. 통화문제는 하반기 경제상황을 봐가며 필요할 때 한국은행과 협의할 것이다.
-일본의 엔화약세 정책이 한국의 수출에 큰 타격을 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용인할 수 있는 원-엔 환율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정책당국자로서 말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무역업계의 반응이 과거와는 다르다. 이미 가격으로 밀어붙여 수출할 때는 지났으며 기술력 등 경쟁력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중국에 언젠가 밀린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또 지난 4년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많이 바꿔 엔저를 상당히 잘 이겨내고 있다.
- 외환보유고가 1000억 달러가 넘어섰다. 세계화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져 적정외환보유액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 반면 지금의 외환보유고는 너무 많으니 다른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적정외환보유액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등급이 된 것도 아니며 앞으로 무역수지 흑자폭도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이같은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건전한 재정이라는 한국경제의 큰 강점을 희생했다. 현재 국가채무는 GDP의 20%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70%나 EU가 출범 당시 회원국에 요구했던 40%보다 낮지만 앞으로 계속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는데는 재정을 건전하게 꾸려온 것이 큰 힘이 됐다. 재정수지가 작년에 조금 흑자를 내긴 했지만 현재 적립단계에 있는 국민연금 부분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1% 정도 적자였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대로 간다면 국민연금은 2030년경 고갈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공적자금 부담도 정부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외환위기 직후 당장 급한 불을 끄느라 3년, 5년짜리 국채를 발행한 것이 계속 돌아오고 있다. 이를 차환발행하면서는 20년, 30년짜리로 바꿔가며 장기적으로 갚아가야 한다. 사실 공적자금 가운데 예금대지급으로 나간 부분은 회수율 30%를 넘기기 힘들다. 올해 6월말까지 회수가능한 액수가 얼마인지, 실제 국민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 얼마인지 추산해 국회에 보고할 것이다. 부담이 적지 않겠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공적자금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십년간 부실화된 금융구조를 개선하는데 드는 비용 이다.
-경제팀의 팀장으로서 한국경제가 나아갈 모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일부에서 핀란드 싱가포르 등 작으면서 잘 사는 나라를 모델로 강소국 (强小國)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인구나 경제규모로 볼 때 절대 강소국이 될 수 없으며 강중국(强中國)이라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제조업도 키우면서 지식기반사업을 육성해야 한다. 서비스산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다행히 정보기술(IT) 분야 등에서 일본보다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동북아의 물류중심지로 키워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남북문제뿐 아니라 한반도의 경제적 생존전략으로도 꼭 필요하다.
-최근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는 세계적 기업과 제휴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중에 삼성전자도 포함되는 것인지, 독자생존론은 안된다는 것인지.
그것은 일반론이다. 하이닉스는 세계 반도체업계 3위의 키 플레이어 다. 반도체 생산업체이건 반도체를 갖다 쓰는 업체이건 간에 전략적 제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얘기를 했을 뿐인데 과다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독자생존의 조건을 엄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누가 돈을 낼 것인지 봐야 한다. 현재 막바지 절충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생명 매각문제는 어찌될 전망인지. 한화가 유리하다는 전망이 있는데.
특정업체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막바지 협상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상대방의 제시가격이 낮은 것이 문제다. 작년에 대생이 7000억원 정도 흑자를 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해 예금보험공사가 다시 협상을 하는 것으로 안다.
-작년 정부의 건설부문 활성화가 아파트값 인상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쪽 면만을 본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아파트 공급물량이 너무 많이 줄었다. 이대로 놓아두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필요성이 맞물려 주택경기 활성화대책을 썼다. 여기에 유동성문제, 저금리문제, 학원군문제, 수능문제 등이 겹쳐 가격이 올랐다. 건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해 주택보급률 100%를 이룬 뒤 더 나아가 110%까지 높이는 등 공급을 늘려야 한다.
-1월 정부의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또 서민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큰데.
최근 건설교통부와 합의해 대도시지역 그린벨트를 풀 때 우선적으로 임대주택을 지어 임대주택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할 때 강남 일부지역 등 특정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주택가격은 내년부터 안정화될 것이다. 최근 주택가격 인상속도는 다소 떨어졌다. 특정지역 집값문제는 교육문제 등과 얽혀있어 다른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다이내미즘 (역동성)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 경제는 결국 사람이 끌어가는 것이며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역동성을 부여하느냐하는 문제다. 한국 국민의 최대 장점인 다이내미즘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꽃피울 것인지가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