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A카드사에 입사한 P씨. 지난달 20일부터 금융감독원이 카드모집인의 가두모집 활동을 단속하면서 다시 ‘빌딩을 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빌딩타기는 고객들이 일하는 직장을 직접 찾아가 신규회원을 모으는 카드사들의 90년대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 점심을 건너뛰기 일쑤인 데다 잡상인 취급하는 잠재고객들 때문에 ‘6년차 직장인’의 자존심은 온데간데 없다. P대리는 노점상들을 쫓아낼 때 동원하는 도로교통법으로 카드모집을 금지하는 감독당국이 영 마뜩찮다.
2001년기준 국내 발급된 신용카드는 모두 8933만장. 경제활동 인구당 거의 4장씩 보유한 셈이다. 가맹점 수도 1263만개 점포에 달한다.
이렇듯 ‘포화상태’를 우려, 당국이 강력한 견제에 나섰지만 카드업계의 물밑 마케팅은 여전히 뜨겁다. 소득공제 혜택 등으로 회원들의 카드이용 실적이 쑥쑥 늘어가는 데다 ‘박리다매(薄利多賣)’형 수익구조 때문에 회원을 모으는 것이 바로 수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카드업체들의 항변〓카드모집인의 수당구조는 카드업계의 영업활동의 단면을 보여준다. B카드사의 계약직 모집인들의 수입은 기본급에 10여가지의 수당이 붙는 방식. 가장 기초적인 수당은 ‘가동(稼動)수수료’. 카드를 발급받은 고객이 실제로 처음 사용하면 받는다. 그만큼 발급후 버려지는 카드가 많다는 증거다. 유치 건별 수수료와 팀별로 받는 판촉활동수수료도 있다.
무조건 많이 유치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유치한 카드회원의 이용실적에 따른 수수료가 있고 설계사들의 장기근속 수당도 마련돼 있다. 꾸준히 실적이 있어야 하는 셈. 우수고객으로 판정되면 수수료가 올라가고 행여 연체하면 기본급이 깎이는 ‘중징계’를 받는다.
실제로 설계사들이 끌어온 고객 중 40% 정도는 신용체크에서 탈락한다. 카드업계는 “수당구조를 보면 설계사들이 무조건 아무나 붙잡고 카드를 발급하는 것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카드업계〓가두모집 금지조치가 나오자 은행계 카드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문계 카드사들이 LG 삼성 현대 동양을 다 합쳐 지점이 124개에 불과한 반면 은행계(BC계, 국민카드계, 외환카드계)는 9500여개 은행지점을 영업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은행에 가서 계좌를 트면 여지없이 “카드 하나 만드세요”라는 창구직원들의 권유가 따라나온다. 전문계 카드사는 “가두모집하는 우리의 연체율이 은행계 카드보다 절반 수준인데 왜 ‘마구잡이 발급’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다.
삼성 LG 등 선발주자들은 그나마 느긋하게 영업을 하는 편. 발급된 카드수가 각각 2100만, 1700만장으로 이미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반면 후발업체들은 적정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마케팅에 결사적이다.
▽다양해진 고객확보전〓LG카드가 발행한 제휴카드는 모두 505종. 너무 많아 직원들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다른 카드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마일리지를 쌓은 뒤 항공료 할인을 받는 카드는 ‘고전’에 속한다. 제휴카드 중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은 ‘**사랑카드’라는 이름을 붙인 동호인 전용카드. 학생자녀 학원비를 할부로 낼 수 있는 학원카드가 나오는가 하면, 골프마니아를 위한 골프카드도 시장에 나왔다. 모두 대형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고객을 단번에 늘리는 것이 벽에 부닥치자 맞춤형 서비스카드로 전환한 사례.
인터넷에서 고객을 찾는 것도 카드업계의 유행이다. 고소득 중장년층 고객을 타깃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가두모집과 인터넷 마케팅에 소홀했던 동양아멕스 카드는 최근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블루카드’를 내놓은 뒤부터 인터넷 마케팅에 나섰다. 배너광고가 고객확보 수단.
▽휴면계좌를 살려라〓업계는 발급된 카드 중 절반은 휴면상태인 것으로 추산한다. 가두모집이 불가능해진 이후 이를 ‘깨우는’ 것이 새로운 틈새영업 방식으로 떠올랐다. 선발업체들의 경우 회원들을 수 백 가지 기준으로 분류, 구매행태 등을 파악한 다음 가장 적절한 판촉활동을 벌인다. LG카드 관계자는 “고객관계관리(CRM)를 구축하는 데 수백억원을 들였다”며 “가두모집 금지로 경쟁력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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