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도전에 대한 시대를 앞서가는 응전이야말로 역사 발전의 제일 전략이라는 진리를 재인식하게 된다.
▼토종기업 잇따라 외국인 손에▼
우리는 지난날 국내외의 시련을 용케도 잘 극복했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경영철학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새로운 현실’에서 한국은 20세기 초 나라를 잃은 최빈국에서 20세기 후반기에 와서는 세계에서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유일한 나라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장인 제프리 존스가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가가 아닌 선진 산업국가라고 단언했다. 선진 산업국가의 지표로 철강 자동차 반도체 조선 항공산업의 발전을 드는데, 한국은 항공산업을 제외한 4개 지표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는 60, 70년대의 오로지 ‘하면 된다’는 불굴의 국민적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근로자의 힘이 결집해 그 기초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우리의 정치·경제적 행태는 어떠한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조명해 보면 국가 간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어제의 영광이 내일의 승리를 보장하는 법은 없다. 오로지 현재의 국민의 올바른 행보만이 어제의 영광을 계승해 미래로 전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88올림픽경기대회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 주역의 하나로서 크게 자만한 나머지 경제성장의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려 10년 가까이 적게 일하고 너무 많이 즐겼다. 그에 대한 값비싼 대가는 현실로 드러나 98년 외환위기의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외세 침략 등의 민족적 시련에는 똘똘 뭉쳐 고난을 잘 극복하지만 일단 국난을 극복하고 태평성대의 좋은 시절이 오면 과거는 금방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다.
21세기에 우리는 20세기와는 전혀 판이한 세계 경제적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국가 간의 무한 경제전쟁을 예고하는 세계화의 도전이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철학자인 울리히 베크는 저서 ‘세계화의 길’에서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작동하는 다국적기업은 국민경제와 국민국가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바로 개별 주권국가의 물질적 금융적 동맥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개별 기업의 지배주주가 되어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더욱이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활동은 개별 국가의 법에 구애됨이 없이 일상적인 시장경제의 비즈니스 속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지극히 어지럽다. 정치가 무기력해지고, 각 분야에서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건전한 노사문화의 정착이 늦어지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관료주의의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다. 경제력 있는 중산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면한 채 점점 건전한 경제생활에서 이탈하고 있다.
경쟁력있고 쓸만한 토종 대기업들은 속속 그 주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주주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포항제철 삼성전자 국민은행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국민은행은 주식의 71%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경제전쟁 이길 환경 조성을▼
그렇다면 이들 다국적 기업이나 주식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한 대기업을 국내 기업과 동일한 선상에서 강도높은 세무조사, 정치적 규제, 또는 노동조합의 저항을 통해 견제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다국적 기업들은 노조의 저항이 적고 노동력 투입에 대한 비용과 세금 부담이 적은 다른 나라로 옮아갈 것이다. 미국의 맥도널드 사는 인건비가 싸고 세금이 적은 인도로 사업본부를 이전했다. 독일의 BMW사의 회계본부도 세금이 없는 룩셈부르크로 옮아갔다.
이미 다국적 기업의 지배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강도높게 진행 중에 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현명하게 응전하기 위한 정부·기업·노동계의 국민적 결집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를 통해 국제 경쟁력이 있는 기업환경의 조성과 사회적 안정을 이뤄나갈 수 있다.
박응격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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