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싸움의 발단은 이달 말 만기가 되는 예보채 4700여억원의 차환발행 문제. 올해 말까지 만기가 되는 4조5000억원어치의 예보채 중 첫 번째 물량이다.
정부 여당은 “차환발행이 그동안 3년이던 예보채의 만기를 늘려 단기채를 장기채로 전환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차환발행은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국회동의를 거부하면서 공적자금의 집행 내용 및 회수 불가능한 액수 등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공적자금은 30여년 동안 쌓여온 한국 금융구조의 병폐가 외환위기로 불거지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돈이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됐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던 재정의 건전성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렀다.
물론 당시 한국이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금융구조조정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투입은 불가피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 금융기관들은 공적자금이라는 자양분을 토대로 경영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작년 대규모 순이익을 냈다. 아직 과제가 남아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해외로부터 받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막대한 공적자금을 방만하게 관리해 필요 이상으로 낭비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많은 은행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났고, 수많은 금융기관 임직원이 고발당하거나 재산을 압류당했다.
공적자금 투입은 한국으로서는 첫 경험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잘못이 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정부 여당이 시행착오나 잘못에 대해 솔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치 정부는 절대 잘못을 저지를 리 없다는 권위의식까지 엿보이곤 한다. 이런 태도가 필요 없이 야당과 여론을 자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공적자금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엇보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을 만든 일차적 책임자는 한나라당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단 한 번도 책임을 느낀다거나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일이 없다. 마치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처럼 오직 정략의 도구로 활용했을 뿐이다.
이번 줄다리기에서도 여야의 속셈은 뻔히 들여다보인다.
공적자금의 세세한 내용 및 회수 전망을 당장 밝히라는 한나라당이나 평가단의 조사를 거쳐 6월말에 밝히겠다는 정부 여당의 대응은 모두 지방선거(6월 13일)를 의식하고 있을 뿐이다. 진실로 경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주에도 계속될 정부 여당과 야당의 줄다리기를 잘 지켜볼 일이다.
김상영 경제부차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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