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In & Out]"꼭꼭 숨겨라 명품 들킬라" 공항 '눈치 경연장'

  • 입력 2002년 3월 25일 17시 14분


인천공항 휴대품 검사원으로 일하는 선영임(宣英任·여)씨는 비행기의 출입국을 알리는 단말기에 ‘도착(ARRIVED)’ 표시가 뜰 때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다.

여행객들이 입국장에서 각자의 짐을 찾아 출구로 빠져나가기까지는 불과 2∼3분. 선씨와 동료 휴대품검사원 80여명은 이 짧은 시간 동안 세관 신고를 둘러싸고 명품 쇼핑객들과 소리없는 전쟁을 치른다.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은 한 상품이 보통 300달러 이상 하는데 신고 없이 통과할 수 있는 한도는 400달러거든요. 선물용 등으로 몇 점씩 사들여오면 반드시 세관 신고를 해야 하죠.”

▽명품 들여오기 백태〓과거에는 홍콩이나 중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주요 검사대상이었다. 대부분 보따리 장사꾼들로 가짜 명품을 수백점씩 들여온 상표법 위반 사범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고가의 진짜 명품을 사들여온 뒤 세관에 신고를 안 하는 명품 쇼핑족, 다시 말해 관세 미신고 사범들이 주요 검사대상으로 떠올랐다.

명품 쇼핑객들의 나이도 크게 낮아져 40,50대보다 20,30대 회사원, 사장, 명품 상인들이 70% 이상이다.

눈에 띄게 늘어난 명품 쇼핑객은 신혼부부. 손에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어깨에 프라다 핸드백을 맨 뒤 옷가방에는 조르지오아르마니 양복, 세면가방에 샤넬 보석벨트를 담아온다. 흔히 혼수품으로 명품을 구입했다는 이들은 보통 3000∼5000달러 어치를 구입해 들어온다.

서울 강남일대에서 명품 상점을 운영하는 20, 30대 여성들도 주요 검사대상이다.

주인과 직원 4, 5명이 함께 명품 구매를 다녀와 자신의 매장에 전시해놓고 판다. 이들은 입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 서로의 여행가방에 상품을 나눠 담고 입국장에서는 개별 여행객처럼 행동하며 들어온다.

한 명이 세관에 걸리더라도 무사히 통과한 다른 직원의 명품을 팔 수 있고 며칠 뒤 부과된 세금을 내고 명품을 찾아간다.

선씨는 “요즘엔 평범한 유학생이나 회사원들도 인터넷을 통해 팔려고 명품 쇼핑에 나서고 있다”며 “직업이나 소비수준, 나이에 상관없이 해외여행객의 25% 정도가 명품 쇼핑객”이라고 말했다.

▽명품을 찾아내라〓인천공항세관은 명품에 관심이 높고 투명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20대 여성들로 휴대품 검사원을 전원 교체했다.

이들 여성 검사원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공항 내 면세점을 찾아가 실제 명품들을 보며 눈높이를 올린다. 인터넷 명품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명품들의 외형과 가격 등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해외 주요도시의 세일기간과 패션 박람회, 명품 브랜드의 신상품 출시 일정도 체크 사항. 검사원들은 지난해 말 유럽과 미국의 세일기간 때 국내 명품 마니아들이 대거 몰려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품 자체뿐만이 아니다. 브랜드별, 상품별로 포장박스나 진품확인서의 모양 등을 속속들이 꾀고 있어야 여행객이 얼마 정도 가격의 명품을 구입했으며 세관 신고의무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진품 여부는 세금 부과 여부와 부과율(20∼50%)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천공항세관 휴대품과 전민식(田敏植) 반장은 “가짜 명품은 시중에 유통시킬 목적으로 대량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한 두개 정도는 400달러 한도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연예인들이 TV출연 등을 위해 가짜 명품을 몇 점씩 사서 들어오기도 한다”고 귀뜀했다.

▽부족한 납세의식〓인천공항세관 조사총괄과 배국열(裵國烈) 반장은 고소득층의 부족한 납세의식에 혀를 내두른다.

얼마 전 4000달러(약 52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여행가방에 넣어 들여온 30대 증권사 직원은 세금 150여만원을 내지 않으려고 세관 신고대를 지나쳤다.

휴대품검사원에게 ‘세관 신고할 것이 없다’고 대답했던 그는 사복을 입고 동태를 살피던 또 다른 검사원이 적발하자 ‘이제 막 신고하려고 했다’며 말을 바꿨다.

“조사가 시작되자 우선 자신의 연봉이 7억원이라는 말부터 시작하더군요. 관세청 고위급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연줄을 과시하더니 결국엔 고문변호사를 부르겠다고 난리를 쳤죠.”

결국 벌금 300만원을 내고 시계는 몰수당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이 억울하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배 반장은 “고소득 명품 쇼핑객들은 ‘남들이 다 내는 세금을 내지 않아야 힘과 권위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더욱 휴대품 심사가 강화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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