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대한민국 여고생의 평균키가 160㎝라고 하더군요. 요새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훤칠한 젊은 남녀들이 워낙 많아서 그보다는 훨씬 크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평균키를 잡아먹는 ‘슬픈 키’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를 가진 저도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신났던 일 중의 하나가 하이힐을 신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남자들과 나란히 서서 키를 재보는 것이었어요.
비록 10㎝ 정도는 제 키가 아니더라도 슬쩍 내려다보는 짜릿한 기분은 다리를 몇 번씩 접질리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즐거움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마침 제 눈에 딱 걸리는 광고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리카르도 카틸론이라는 제화업체의 하이힐 광고인데 그 흔한 카피 한 줄 없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온통 위에서 내려다 본 남자들의 머리뿐입니다. 때로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때로는 파티장 안에서, 도서관에서….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흰머리에서, 염색한 머리, 대머리까지….
그러고 보니 이런 비주얼은 보통의 키를 가진 여자들은 평생 볼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아니겠습니까. 하이힐은 몇 안 되는 여성들만의 특권 중 하나이고 그 특권을 누릴 바에야 이왕이면 확실한 하이힐로 ‘내려다보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어라’는 이 광고의 애교 있는 호소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21세기를 달려가는 이 시대에 ‘왜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를 타고나는 걸까’라는 신체적 남녀불평등에 대해 새삼스럽게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만큼 누리는 즐거움과 여유가 삶에 가져다주는 활력에 대해서 간과하지 말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이 새봄에 어울릴 만한 하이힐 하나 장만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혜원 제일기획 시니어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