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들〓현대그룹의 모태가 건설이었다면 그 성장의 페달을 밟은 것은 자동차 산업이었다. 국산 고유모델의 자동차 생산은 3월21일 1주기를 맞은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명예회장의 신화를 이루는 걸작 중 하나였다.
1960년대 정주영씨는 건설업으로 회사를 키워나가면서도 자동차 산업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청년 시절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 서비스’로 자동차와 맺었던 인연은 결국 67년12월 자동차 산업 진출로 이어졌다.
▼주변 만류 뿌리치고 결행▼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國旗)’라고 본 그의 안목은 정확했지만 여건은 불리하기만 했다. 울산 앞바다의 매서운 바람, 주위의 우려와 만류, 합작사인 포드자동차로부터 받은 설움…. 그러나 정주영씨의 불도저 기질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침내 76년1월, 현대차는 숙원의 고유모델 1호인 ‘포니’를 탄생시켰다.
그후 26년. 현대차는 승용차 고유모델만 33종을 생산하면서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삼성그룹의 오늘을 있게 한 반도체는 경영자의 결단과 삼성의 기업문화 시스템의 합작품이었다. 출발은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안목이었다. 사카린 밀수사건 등의 과오도 있었지만 돈을 버는 감각만큼은 출중했던 이 회장은 83년 2·8 도쿄 구상 끝에 반도체산업 본격진출의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가 사업추진을 본격화하자 기업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투자규모와 사업성격에 비춰 위험부담이 높다는 이유였다. “잘못하면 그룹 전체를 태평양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을 계기로 선진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이 회장과 최고경영진의 목표는 확고했다. 오너의 선택을 뒷받쳐준 게 삼성의 기업문화였다. 핵심기술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 삼성의 강점인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인재양성 등이 있었기에 지금의 반도체 1위(메모리)라는 신화는 가능했던 것이다.
▽무모한 도전과 기적〓1968년 봄 포항 영일만 모래벌판에 몇 명의 사내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들은 남들이 모두 “무모하다”고 하는 일에 도전장을 내밀려고 하고 있었다.
▼“실패땐 바다에 빠져 죽자”▼
박태준(朴泰俊) 포철사장과 10여명의 건설요원들. 바닷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모래가 휘날려서 모래안경을 써야 했다. 현장 사무소 ‘롬멜하우스’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곧장 바다에 빠지게 돼 있었다. 박사장은 “이 일에 실패하면 차라리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다그쳤다.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이 포철 기적의 바탕이었다.
“기술도 자본도 부존자원도 없는 형편에 무슨 제철소냐”는 비아냥은 오히려 응원이 됐다.
1기를 완공해 고로에서 첫 번째의 쇳물이 쏟아져 나온 게 73년 6월9일.
“나왔다 나와. 만세, 만세∼.”
103만t의 생산능력은 29년만에 2782만t으로 늘어나 세계 1위를 다투는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한국경제의 성장사에 다름 아니었다.
▽새로운 시장의 개척〓삼성으로부터 분가한 제일제당이 새로 진출한 사업은 대부분 ‘벤처형’이었다. 위험부담도 컸지만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것들이었다.
벤처정신의 개가는 영화 산업이었다. 95년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가 설립한 할리우드 벤처영화사 ‘드림웍스’의 2대 주주로 참여할 때 회사 안팎에선 ‘무모한 도박’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투자금액도 금액이거니와 식품회사가 영화사업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제일제당은 계열사 ‘CJ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드림웍스사 작품의 아시아 배급권을 따냈다. 영화산업의 기업화라는 실험은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 등 히트작 퍼레이드로 이어져 대성공을 거뒀다.
웅진식품의 ‘신토불이’ 음료는 음료시장에 태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95년부터 대추음료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음료를 내놓음으로써 웅진은 음료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시장’을 읽은 선택〓LG전자가 가전제품으로 두터운 중국시장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시장을 제대로 읽은, 제대로 된 전략의 선택에서 가능했다.
넓고 큰 땅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황소처럼 천천히 지역에 밀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파한 LG의 전략은 적중했다. 톈진(天津) 등 LG전자 현지공장은 지난해 상당한 흑자를 기록했다.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엔 LG 이름을 영구적으로 명명한 도로까지 생겼다.
신세계 할인점 E마트에는 요즘 일본의 유통업체들이 자주 찾아온다. 성공비결을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무차별 공습으로 유명한 월마트에 맞서 토종기업이 밀리지 않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된다.
E마트의 선전은 신세계가 외환위기 이후 할인점을 성장의 축으로 삼았던 전략의 승리다. 외환위기 직후 극심한 불황기인 98년 한해 동안 백화점업계의 매출이 20% 이상 줄어들었지만 E마트만은 매출액이 오히려 62.9%나 상승했다. 상승세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면서 할인점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96년 4월, ‘용인자연농원에서 테마파크 에버랜드로의 변신’은 여가문화의 변화를 읽은 통찰력이 주효한 사례다. 넓은 들판에 놀이시설만 있던 곳에 물놀이 공원 등을 세우고 국제적 감각의 이름으로 얼굴을 바꿔 세계 5대 테마파크에 올랐다.
이명재기자 milee@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