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은행돈 왜 씁니까"…회사채-CP등 직접금융 선호

  • 입력 2002년 4월 7일 18시 22분


요즘 우량 대기업의 자금팀 직원들은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다.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한다’는 상식이 깨지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의 현재 차입금은 4조8000억원. 이 가운데 은행 차입금은 아예 없다. 자금흐름상의 미스매치(Miss Match)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 5000억원 한도를 설정한 당좌대월도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전에는 은행 차입의 비중이 30%를 항상 넘었다.

LG전자 역시 작년 한 해 은행 빚을 갚아버려 외화대출 외에는 금융기관 부채가 없다.

내부유보자금이 3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는 ‘무차입 경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량 대기업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은 더 싼 자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박흥국(朴興國) 이사는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면 연리 7% 이하인데 은행 자금은 우대금리라도 7∼8%”라고 말했다. SK텔레콤 자금팀 조중연 과장은 “기업에 군림하던 은행의 고자세는 없어진지 오래됐고 서로 와서 돈을 써달라고 조를 정도”라고 말했다.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대기업은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서 자금을 마련하는 추세다.

국내기업들이 작년 한 해 조달한 외부자금(순증 개념) 51조9000억원 중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은 1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비중으로 보면 2.3%. 대신 회사채, 기업어음, 증자 등 직접금융으로 조달한 자금이 36조8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강태중 차장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자금조달 패턴이 직접금융 비중이 높은 미국식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박사는 “주거래은행이 기업의 자원배분을 통제하고 감시하던 방식에서 직접금융시장이 기업을 직접 규율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탈(脫)은행화는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기업 자금조당 구성비율 (단위:%)
 80∼90년91∼95년96년2000년2001년
간접금융37.036.928.017.12.3
직접금융39.442.347.328.671.0
국외차입3.26.310.223.74.4
기타20.414.514.530.6%22.3
기타는 상거래신용, 퇴직급여충당금, 미지급금 등.
자료: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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