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에서는 남성이 대부분인 이들 분야에서 외국계 기업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일할 기회가 폭넓게 주어지고 실적을 계량화하기 때문에 승진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 EMC의 박재희 이사는 올 초에 마케팅 부문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는 2000년 EMC의 전 세계 지사 가운데 ‘최고 마케팅 매니저상’을 받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고문서 ‘직지심체요절’ 찾기 운동을 후원하는 식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마케팅 활동을 펼쳤기 때문. EMC 주관 세미나를 열 경우 그가 소개문을 보내면 참석률이 높아질 정도로 주요 고객에게 인지도가 높다고 한다.
박 이사는 “마케팅은 영업이라는 주연이 빛나도록 도와주는 조연”이라며 “빛나는 조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연하고 기민한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인 MSD의 모 진 상무는 한국 P&G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얼마 전 스카우트됐다. 모 상무는 P&G에서 생리대 ‘위스퍼’를 처음 한국에 소개할 때부터 ‘날개가 달려 옆으로 새지 않는다’ ‘커버가 부드럽다’ 등의 포인트를 잡아서 마케팅을 주도해 한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주인공. 길거리의 체험마케팅을 처음 시도하기도 했다.
인텔코리아의 권명숙 마케팅본부장은 최근 ‘일’을 냈다. 인텔 펜티엄4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하철 1∼8호선(2호선 제외)을 다니는 지하철 10량 짜리를 한 대씩 빌려 펜티엄4 광고로 도배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성공적으로 실행했던 것. 인텔은 소비재가 아닌 부품인데도 최근 들어 펜티엄4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1999년부터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권 본부장은 이에 앞서 한국의 PC 제조업체들과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을 주도하기도 했다.
유니레버의 김재경 이사는 자사의 샴푸가 최대 경쟁사인 P사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자동차 업계의 여걸’인 BMW코리아의 김영은 홍보부장은 최근 이사로 승진했다. BMW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등 한국화에 성공한데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대행사 출신으로 97년 1월 BMW코리아에 합류했다.
이 밖에 필립스코리아의 유재순 실장, 인텔코리아의 오미례 이사, 컴팩코리아의 정미교 부장, 시스코코리아의 홍소연 부장 등도 홍보업계를 주름잡는 여성요원이다.
13년 동안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을 거치면서 홍보업무를 해 온 정미교 부장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여성 팀장이 드물었으나 이제는 마케팅 홍보 등에서 눈에 띄게 늘고있다”며 “한국기업들도 경쟁력 있는 여성을 다각도로 활용하는 풍토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