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진출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본사 직원의 현지화’보다 현지인 활용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진출 초기에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나 시스템 정착을 위해 한국인 직원이 필수적이었지만, 이젠 현지인 활용 단계로 바뀌고 있는 것. 특히 종전의 생산직 위주에서 최근에는 관리직에까지 현지인을 활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래 비전 사업 책임자도 현지인으로〓현지화의 대표 사례가 SK의 중국 사업. 지난해 ‘중국 속의 SK’를 선언할 정도로 중국 사업에 집중투자하고 있는 SK는 중국 법인인 SK차이나 대표에 중국인 셰청(謝澄)을 임명했다.
셰청 대표는 SK차이나의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 지난해 10월 ‘상하이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그룹 경영진 30여명 앞에서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셰청 대표를 지원하는 인력도 대부분 중국인. SK차이나 직원 130여명 중 한국에서 파견 나간 주재원은 10명 안팎. 그것도 SK의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에 낯선 중국인들과 한국의 SK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정도다.
▽관리직까지 현지화 추세〓다른 대기업들도 생산직 근로자를 주로 채용했던 것에서 나아가 관리직까지 현지인에게 문호를 넓히고 있다. 관리직은 아직 한국에서 보낸 직원이 많지만 대기업들은 점점 더 현지인 채용을 늘릴 계획이다.
LG전자는 140개 해외 지사에, 공장 근로자까지 포함해 3200명 정도의 인력 중 1%만 본사 파견이다. LG전자 박진관 리크루팅그룹장은 “최근엔 법인장과 지사장급도 현지 경영자를 뽑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판매 지사장(법인장급)의 경우도 7명 가운데 2명을 작년과 올해 각각 현지인으로 충원했다.
포스코(옛 포항제철)의 10여개 해외 법인과 사무소 생산직 절대다수도 현지인. 관리직은 90% 이상 한국 본사에서 파견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사장급까지도 현지인으로 뽑겠다는 전략이다.
고급 인력이랄 수 있는 정보기술(IT) 및 연구 분야는 이미 현지화가 뚜렷하다. 삼성전자가 미국과 중국 일본 영국 등 8개국에 운영중인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인력은 모두 700여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현지의 ‘고급두뇌’들이다. LG전자도 인도의 소프트웨어연구소 등 8개국에서 현지 고급인력을 활용한 기술 및 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사정은 현지인이 ‘박사’〓현지인 위주의 채용은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포스코의 양흥열 인사담당 팀장은 “현지 인력은 현지의 법과 관습을 잘 알고, 현지에 맞는 제품 개발을 잘한다”고 현지인 채용의 강점을 들었다.
한국보다 외국 진출 경험이 많은 주한 외국기업을 봐도 그런 추세가 보인다. 한국3M의 경우 국내 진출 25년간 외국인은 내내 사장 한명밖에 없었다.
물론 국내기업들이 무조건 ‘현지화’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삼성처럼 국내 인력의 현지화로 ‘내외’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기업도 있다.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90년부터 실시해온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이 그런 시도다. 삼성은 올해도 145명을 새로 내보내 해당 지역 전문가로 키울 계획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