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는 중국에 휴대전화 제조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히타치는 중국 칭화대와 정보기술(IT) 분야 공동연구를 시작한다. NEC 후지쓰 소니 등은 통신인프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중국에 설립한다. 생산시설은 물론 그동안 해외이전을 꺼렸던 연구개발(R&D) 및 고부가가치 부문마저 ‘일본 탈출’ 대상에 포함하는 기업도 늘었다.
일본 기업들의 중국 진출 러시는 ‘생존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고민도 많다. 특히 고용불안을 가속화할 수 있어 일본 내 생산을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해외이전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신기술 개발과 생산 코스트 삭감에 박차를 가하라는 주문이 나온다. 또 규제완화, 인프라 코스트 삭감, 하이테크 개발에 대한 국가적 지원, 창의력 있는 인재 육성 등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우리 기업들의 중국행(行) 열기도 일본에 못지않다.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은 경쟁적으로 중국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기업 내에서 ‘찬밥’ 신세였던 중국통(通) 임직원의 ‘주가(株價)’도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현재의 고(高)비용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기업들의 ‘한국 탈출’과 ‘산업 공동화’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 외적으로도 기업인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나라가 아니다. 좀 과장은 있겠지만 적잖은 기업인이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기업은 하지 않는다”고 푸념할 정도다.
내부적 한계는 있지만 기업, 특히 대기업은 한국 경제활동의 핵심주체다. 이들의 움직임과 심리에 따라 국민경제 전반이 출렁거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을 자신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졸(卒)’로 여기는 인상을 주는 정치인과 관료가 적지 않다. 외국 기업에는 지나치리 만큼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국내 대기업에 대해서는 툭하면 으름장을 놓는다. 한국 경제개발사의 특성상 부정적 낙인찍기의 이미지가 강한 ‘재벌’이라는 표현을 경제 각료가 공개 석상에서 서슴지 않는다.
한국의 산업 공동화를 최소화하려면 효율적 산업정책과 함께 뒤틀려 있는 우리 사회의 기업관(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의 애환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려 하는 ‘파워 엘리트’가 늘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더라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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