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전문기관의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경쟁력 있는 사업부문과 경쟁력이 없는 사업부문으로 나눠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정리했다. 당초 메모리 사업을 팔고 나머지는 잔존 법인에 남겨 살려나간다는 계획이 메모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을 매각하는 쪽으로 바뀐 것.
이 같은 분할매각 원칙은 채권단이 고합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적용했던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사업매각 자체가 쉽지 않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부문을 대만 캔두컨소시엄에 팔기로 하고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나 결국 깨진 경험이 있다.
▽어떤 절차가 남나〓해외매각안을 부결시킨 하이닉스 이사회가 채권단 방안에 동의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도 하이닉스 이사회가 채권단이 만든 분할매각안을 거부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가 “하이닉스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정부가 독려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분할매각만큼은 반드시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가격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 메모리 사업을 중심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대신 2003년까지 비메모리 사업부문을 부채 없는 깨끗한 회사로 분리해 외국자본을 유치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내용을 따져보면 채권단의 계획은 하이닉스의 독자생존론에 회사 차원의 구조조정을 더한 것이어서 하이닉스 이사회가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은 전환사채(CB) 3조원을 6월 초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 75%를 확보하겠다며 이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다만 분할매각을 위해 대규모 부채를 경쟁력이 없는 사업부문에 몰아넣고 청산하는 것은 사실상 부채탕감에 해당하기 때문에 채권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어떤 부문이 남을까〓채권단 내부에서는 메모리 사업은 살아남고 비메모리 사업은 매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TFT-LCD는 사업성이 나쁘지 않은 만큼 해외매각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메모리 사업만 남겨놓았을 때 하이닉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비메모리 사업은 외자유치가 가능할지 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한번 해외매각에 실패한 기업을 외국인투자자가 다시 관심을 보일지, 얼마나 값을 쳐줄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미국 유진공장은 마이크론의 영업전략상 꼭 필요하기 때문에 별도로 분리해 매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이닉스는 작년 10월 채무조정을 통해 대부분의 대출 및 회사채 만기가 2004년으로 미뤄졌기 때문에 당장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채권단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분할매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하이닉스 처리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