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서영준/˝기업들 일 터지면 입단속…˝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33분


1982년 미국에서 한 정신병자가 존슨앤드존슨의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어 7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존슨앤드존슨은 즉각 사실을 공표하고 범인 검거에 10만달러를 내걸었다. 동시에 모든 재고를 처분하고 이미 반출된 타이레놀을 모두 회수하는 바람에 약 1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존슨앤드존슨은 분명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시장점유율도 이 사건 이후 32%에서 6.5%로 급전 직하했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은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제품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덕분에 타이레놀은 사고 발생 6개월 만에 시장점유율을 예년 수준으로 회복했고,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해열진통제로 사랑받고 있다.

1989년 미국 석유업체 엑슨의 유조선이 알래스카 인근에서 좌초해 원유가 바다에 유출됐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오염 재해로 기록된 이 사건은 그러나 사고 발생 후 1주일이 지나서야 일반에 공개됐다. 회사 측이 사고 발생 사실을 숨긴 것. 뿐만 아니라 회사 측은 언론의 취재에 소극적으로 대하면서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회사 이미지는 추락했고 기업 가치는 폭락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기업들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다. ‘숨기면 작은 것도 커지고, 밝히면 큰 것도 작아진다.’ 경영자들이 명심해야 할 위기관리 방법의 원칙은 ‘감성이 아닌 이성적 판단을 이끌어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정확한 사실 공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홍보일을 하다 보면 기업 고객들로부터 여러 종류의 위기 상황에 대한 자문에 응하게 된다. 과거에 비해 우리 기업들의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이나 대처 방법은 많이 세련되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위기가 닥치면 이성이 아닌 감성을, 정도가 아닌 편법을 앞세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적절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잘못은 했지만 사실이 공개되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 “업계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하면 기사화를 막을 수 있겠느냐”, “언론사 고위층을 아는데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느냐” 등. 사건의 해결보다는 미봉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작심하고 불공정한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요구를 받게 되면 해법이 없다. 이들에게 ‘잘못 시인-공개 사과-재발방지 약속’ 같은 위기관리 매뉴얼의 ABC는 통하지 않는다.

위기 관리에는 당연히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경영자가 돈이 많이 든다거나 회사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위기 관리를 거부하고 ‘부적절한 홍보’를 선택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흔히 돈버는 것만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손실을 얼마나 줄이느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기업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위기 관리가 기업 경영의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생사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사실이다.

서영준 미디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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