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상가 권리금분쟁 해법 나올까

  • 입력 2002년 5월 26일 17시 59분


허승호/경제부 차장
허승호/경제부 차장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것은 세상사의 이치다.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 정부의 개입이 그러한 경향이 짙다. 물가를 억지로 누르려 하면 암(暗)시장이 생기고 이중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를 일컬어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라 부른다.

요즘 말썽을 빚고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좋은 예이다. 입법 의도는 권리금 분쟁에서 항상 불안에 떨고 있는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것. 즉 임대차 계약기간을 5년 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임차인이 권리금도 못 건지고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일을 막자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자 향후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할 것으로 보고 상가소유주들이 임대료를 10∼50%씩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되던 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몇 년 전 주택 임대료와 관련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섣부른 정부개입의 업보가 얼마나 참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기저기 인용돼 왔지만 우리 정부는 별 교훈을 얻지 못했나보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서 무조건 옳다고 맹신하고 방임만 주장해서도 안 될 일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권리금 관행이 임차상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는 길게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 않는가. 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요구하며 10년째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한국점포임대차보호법추진위 백상기 위원장(49)도 날품팔이 포장마차 등으로 모은 돈으로 음식점을 차렸다가 점포주의 “방 빼라”는 말 한마디에 시설비와 권리금을 날리고 쫓겨난 경험이 2번이나 있는 영세상인이었다 한다.

사실 권리금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거래관행으로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영업권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영업권의 핵심인 △취득한 사업인허가 △인적 물적자산 △영업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이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엄밀히 경제적 시각으로만 따지자면 장사가 되는 상가에 대한 일종의 차액지대(差額地代·differential rent)로 점포주가 취해야 할 전세금(지대) 상승분의 일부를 임차인들끼리 주고받는 성격이 짙다.

영세상인 피해의 핵심은 권리금 분쟁이다. 경제적으로 모호하고 법률적으로도 불투명한 권리금 관행은 투명하게 정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고 관행을 아예 무시할 경우 이미 권리금을 낸 기존 임차상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보며 상거래의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현재 정부와 국회는 개선책을 마련하느라 고심중이라 한다. 어떤 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