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썽을 빚고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좋은 예이다. 입법 의도는 권리금 분쟁에서 항상 불안에 떨고 있는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것. 즉 임대차 계약기간을 5년 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임차인이 권리금도 못 건지고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일을 막자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자 향후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할 것으로 보고 상가소유주들이 임대료를 10∼50%씩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되던 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몇 년 전 주택 임대료와 관련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섣부른 정부개입의 업보가 얼마나 참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기저기 인용돼 왔지만 우리 정부는 별 교훈을 얻지 못했나보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서 무조건 옳다고 맹신하고 방임만 주장해서도 안 될 일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권리금 관행이 임차상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는 길게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 않는가. 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요구하며 10년째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한국점포임대차보호법추진위 백상기 위원장(49)도 날품팔이 포장마차 등으로 모은 돈으로 음식점을 차렸다가 점포주의 “방 빼라”는 말 한마디에 시설비와 권리금을 날리고 쫓겨난 경험이 2번이나 있는 영세상인이었다 한다.
사실 권리금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거래관행으로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영업권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영업권의 핵심인 △취득한 사업인허가 △인적 물적자산 △영업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이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엄밀히 경제적 시각으로만 따지자면 장사가 되는 상가에 대한 일종의 차액지대(差額地代·differential rent)로 점포주가 취해야 할 전세금(지대) 상승분의 일부를 임차인들끼리 주고받는 성격이 짙다.
영세상인 피해의 핵심은 권리금 분쟁이다. 경제적으로 모호하고 법률적으로도 불투명한 권리금 관행은 투명하게 정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고 관행을 아예 무시할 경우 이미 권리금을 낸 기존 임차상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보며 상거래의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현재 정부와 국회는 개선책을 마련하느라 고심중이라 한다. 어떤 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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