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김상영/월드컵 효과를 살리자

  • 입력 2002년 6월 9일 20시 28분


생물학에 ‘최소량의 법칙’(law of minimum)이란 게 있다.

생물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각각의 양분 중 가장 적게 섭취한 영양소만큼만 자란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이나 지방을 필요량보다 더 섭취하더라도 단백질을 필요량의 80%만 섭취했다면 80%밖에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를 설명하면서 이 법칙을 사용하는 학자들이 있다.

국가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 가운데 가장 적게 충족된 부문만큼만 그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이다. 흔히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라고 할 때 이 사회의 전체적 수준은 3류가 된다는 뜻이다.

이때 최소량만 제공되면서 생물(사회)의 생육(발전) 속도를 결정짓는 요인을 ‘한정인자’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한정인자로는 낙후된 정치, 고질적인 지역감정, 최루탄과 시위로 요약되는 대외 이미지, 국제 사회에 폐쇄적인 국민정서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중 일부 ‘한정인자’의 투입 상태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두 가지 이벤트가 이번 주 벌어진다. 바로 월드컵과 지방선거이다.

2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준비한 월드컵 개최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11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무형의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다.

가장 큰 효과는 대외 이미지 개선으로 인한 국가 브랜드의 가치 상승이다.

순조로운 대회 운영, 폴란드에 거둔 최초의 월드컵 1승, 전국의 도시에서 심야에 벌어진 열광적이면서 질서정연한 응원열기,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시시각각 전 세계로 타전되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았다.

일본이 한국에게 배워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 이론의 여지없는 선진국이라는 과분한 찬사까지 쏟아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기억하는 이미지로 ‘88서울올림픽’을 떠올리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번 월드컵이 가져올 긍정적 이미지 개선 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이루어진 국민 에너지의 결집과 강한 자신감도 한국 경제와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축구대표팀이 그랬듯이 국제 사회에서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의 회복이야말로 어쩌면 이번 월드컵으로 거둔 최대의 성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전진을 막는 가장 결정적인 한정인자 가운데 하나인 정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흘 뒤에 선거를 치르지만 구태의연한 모습만이 판을 칠 뿐이다.

모처럼 결집된 국민 에너지를 승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유권자들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치라는 한정인자를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전에는 경제도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상영 경제부 차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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