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근무하는 이순주씨(29)는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친구들과 조를 짜서 대학로 시청 등으로 나간다. 아침에는 정상복을 입고 출근하지만 가방 속에는 ‘Be The Reds’ 티셔츠를 넣어와 오후에 갈아입는다. 14일 포르투갈전이 있던 날은 팀 전체가 명동의 한 호프집을 빌려 단체로 경기를 관전했다.
회사원 김성학씨(33)는 폴란드와 경기가 있던 4일 속칭 ‘번개 동창회’를 조직했다. 평소 고교 동창들과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던 김씨는 이날 동창회를 긴급 제안,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맥주바에서 모임을 가졌다. 갑자기 결정된 모임이었지만 가족들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모였다. 포르투갈전이 열린 14일에는 신촌에서 두 번째 동창회를 가졌다.
김씨는 “고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나 힘껏 응원하고 나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면서 “요즘 태극전사들 덕분에 여러모로 살맛이 난다”고 말했다.
‘월드컵 라이프’란 말도 생겼다. 매일 밤 맥주 등을 마시며 TV를 시청하느라 수면이 부족해 다음날 출근은 해도 오전은 비몽사몽으로 보내는 사람이 늘어난 것.
회사원 한경태씨(32)는 포르투갈과 싸우던 날에는 회사 동료들과 축구를 보면서 맥주 5000㏄를 마셨다. 귀가 시간은 다음날 오전 3시. 한씨는 “목이 터져라 응원한데다 술까지 먹어 다음날 회사에서는 거의 정신이 없었다”면서 “하루종일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이날만큼 행복한 숙취는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의 ‘내기 열풍’도 뜨겁다. 월드컵 이후 기업에는 새로운 ‘조 편성표’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1, 2-0 등 경기 결과에 내기를 건 사람들을 요약한 편성표.
경기에 이변이 속출하면서 내기에 ‘헤지(위험회피) 전략’을 쓰는 사람도 있다. 증권 관련 D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씨(31)는 미국-폴란드전에서 서로 다른 5개 팀의 내기에 참여했다가 자신이 2-0이라는 점수에 내기를 걸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국팀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내기턱을 내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중소제조업체에 다니는 박모씨는 26만원의 상금을 탔으나 술값으로 40만원을 썼다.
인터넷 업체에서는 사내 인프라망을 동원해 내기를 하고 경기 결과에 따른 입금을 온라인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