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들이 그동안 반도체 업체간 암묵적 합의를 깨뜨리면서 D램 경기 전반에 악재(惡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20일 미국 법무부의 ‘독점금지법’ 위반 여부 조사와 관련해 미국 현지 법인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또 한국업체에 대한 독일 인피니온의 상계관세 부과 제소와 관련해서도 별도의 대책을 마련중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과 EU의 이 같은 움직임들이 국내 업체에 당장 타격을 주지는 않겠지만 하반기 D램 가격 반등에는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 법무부의 조사는 그동안 유지돼 온 아시아지역 D램 업체들의 암묵적 합의를 차단해 반도체가격 상승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 담합 입증 어려워〓국내 업계는 미 정부의 반(反)독점 조사 착수의 배경에 미국 개인용 컴퓨터(PC)업계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PC업체들이 최근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에 가격 인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 정부를 동원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PC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128메가SD램 고정납품 가격이 개당 1달러대에서 5달러대까지 올라간 배경으로 반도체업계의 담합을 지목해 왔다.
PC업계의 주장에 대해 반도체업계는 반도체경기 불황에 따라 업체별로 공장을 폐쇄하는 등 공급량을 줄인 일은 있지만 법을 어긴 적은 없다고 반박한다.
삼성증권 임홍빈 애널리스트는 “가격담합은 입증하기 어려워 이번 조사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19일 ‘미 법무부의 조사는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설령 가격담합이 부분적으로 인정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제재를 받는다 해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벌금 형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자국 산업 보호용 가능성〓동원경제연구소 김성인 애널리스트는 “가격담합을 입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미 정부의 이번 조사는 하이닉스가 죽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하이닉스 인수 협상 재개설이 돌고 있는 마이크론이 자사(自社)에 불리한 조사 시작 사실을 먼저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꼽힌다.
인피니온의 상계관세 제소는 자사의 ‘명분 축적용’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인피니온은 독일 정부로부터의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EU집행위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피니온은 보조금을 지급 받아야 했던 명분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업체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국과 EU발 악재가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상당기간 D램경기에 악영향을 미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20일 미국 법무부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한국업체를 포함,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대한 가격담합 조사를 시작한 것과 관련 조사 배경과 범위 등을 파악하도록 현지 공관에 긴급 지시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 법무부가 곧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외교부에 ‘한국 기업이 조사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정식 통보하겠다고 알려왔다”며 “조사대상 업체는 독일 등 유럽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관련국과의 협의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