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료특집]해태제과 김성환 연구원 "신제품 이렇게 나와요"

  • 입력 2002년 6월 26일 17시 15분


해태제과 유제품연구소 직원들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성환 선임연구원
해태제과 유제품연구소 직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성환 선임연구원
오전 11시20분. 서울 용산구 후암동 해태제과 유제품연구소.

아이스크림 저장고가 한쪽 벽에 일렬로 나열돼 있다. 맞은편엔 가래떡 뽑아내는 기계처럼 생긴 장비들이 들어서 있고 가운데는 큰 철판이 자리하고 있다. 선반에는 설탕 소금 물엿상자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식칼만 있으면 영판 주방이다.

“이 방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아이스크림이 10종류 이상 탄생합니다. 그 가운데 제품화되는 것은 극소수죠.”

8명의 연구원 가운데 부장을 제외하고는 최고참인 김성환씨(金聖煥·39)는 새로운 아이스크림 개발 작업을 ‘과학이 가미된 예술작업’이라고 부른다. 새 아이스크림을 창조하는 어려움은 예술가의 고뇌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사원 때가 가장 힘들죠〓매년 연구소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은 2∼3명 정도.

“처음 들어오면 맛 훈련을 6개월 동안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려면 먼저 아이스크림 맛부터 구별할 줄 알아야 하죠.”

단순한 설탕맛과 소금맛에서 시작해 바닐라맛, 초코맛에 이르기까지 신입사원이 구별해야 하는 맛 종류는 다양하다.

맛 구별을 위해 혀를 훈련시켰다면 다음은 코를 예민하게 만들기.

“바닐라향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습니다. 훌륭한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미각뿐 아니라 빼어난 후각도 갖춰야 합니다.”

혀와 코 훈련은 6개월 가량 걸린다. 이때는 아이스크림을 하루 10개 이상 먹는다.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연 이틀을 먹으면 물리는 법. 설사하고 배탈나는 경우는 대부분 신입사원 때다.

입사 후 1년 정도 무사히 훈련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신제품을 만들 자격이 주어진다. 본격적인 예술가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번데기가 나비로 탈바꿈하는 때이기도 하다.

▽2년 정도 몰두해야 제품 하나 나옵니다〓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고 했던가. 예술작품 같은 아이스크림 하나 만들려면 2∼3년 걸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매일같이 10종류 정도 아이스크림을 만들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제품은 2년 정도 걸리죠. 94년부터 제품 개발에 들어가 96년 4월에야 피스타치오 맛 부라보콘을 내놨습니다.”

김 연구원은 새 부라보콘을 만들기 위해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100곳 이상 돌아다녔다. 직접 먹어보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주로 고르는지 체크하기도 하면서….

김 연구원이 최종적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종류는 3가지. 체리 쥬빌레, 피스타치오, 피칸 프로리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가장 소비자 반응이 좋았던 체리 쥬빌레 맛 개발에 착수했다. 결과는 실패. 체리향이 꼭 화장품 냄새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피스타치오 맛 차례. 아이스크림 속 공기 비율을 높여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너무 달지 않게 만드는 데에도 신경 썼다.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을 만든 후 정기적으로 와서 시식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룹에게 먼저 선보였다. 반응이 좋았다. 1차 관문 통과.

중고대학생 그리고 주부 각각 8명으로 이뤄진 전문 모니터 요원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2차 관문 통과.

마지막 관문은 중고등학교 2개반 학생에게 심사받는 집단 테스트. 마지막 단계에서 나쁜 평가를 받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은 집단 테스트도 무사히 넘겼다.

긴 과정을 통과해 피스타치오 맛 브라보콘이 96년 4월에 탄생했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앞다퉈 내놓을 정도였다. 지난해 피스타치오 맛 브라보콘만으로 100억원 매출을 올렸다. 해태제과 유제품 전체 매출액은 2300억원 정도.

▽아이스크림 제품을 오랫동안 개발하다보니〓“많은 사람들이 배탈이 자주 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신입사원 때 빼고는 아이스크림 먹고 배탈난 적은 없어요. 대신 이가 많이 상했습니다.”

매일같이 당도 높은 아이스크림을 먹다보니 대부분의 연구원이 이가 좋지 않다. 김 연구원만 해도 땜질한 이가 5개다.

“어딜 가나 아이스크림 저장고부터 본답니다. 혹시 경쟁사가 신제품을 만들지는 않았나, 어떤 게 많이 팔리나 보는 거죠. 직업병입니다. 하하”

김 연구원은 해외여행을 가면 더 고생이라고 귀띔했다. 그 나라 아이스크림을 한 박스 사오기 때문이다. 세관에서 짐 검사하면서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크림을 한 움큼 덜어낸 적도 허다하다.

이가 상하고 짐 고생을 하는 것은 그래도 낫다. 1년에 3∼4개월은 가족과 떨어져 지방 공장에서 지내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다.

“새 제품을 만들면 지방 생산공장에 기술 이전을 합니다. 이 과정이 절대 간단치 않죠. 지방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원 제품과 똑같은 맛이 나도록 하나하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한달이 후딱 지나가죠.”

김 연구원은 다음주도 출장이라고 한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지면으로 인사를 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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