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들이 색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즉석식품류나 과자들도 앞다퉈 빨강, 파랑, 초록색 포장 옷을 입고 고객을 유혹한다. 식음료업체들은 고정 색상에 반기를 든 다양한 색깔의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식음료 업계에 불고 있는 ‘색깔 바람’은 월드컵 열풍(熱風)과 맞물리면서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타오르는 레드(red)〓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 덕택에 붉은 색 상품의 매출이 덩달아 늘고 있다. 붉은 색은 중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색깔로 어느 분야나 1위 기업, 또는 상품에 많이 쓰인다.
먹고 마시는 분야에서 빨간색은 ‘따뜻한’ 이미지로 식욕을 자극하는 색깔이다. 제일제당의 즉석 쌀밥 ‘햇반’은 이런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포장에 붉은 색을 주로 써 밥의 이미지인 따뜻함, 정성, 가족 등을 풍긴다. 밥에 가장 적합한 색상은 ‘붉은 색’이라는 게 제일제당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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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정)이 빨갛게 무르익었습니다”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동양제과의 ‘초코파이’도 최근 레드 마케팅으로 돌아섰다. 동양제과는 올 3월 74년 처음 제품이 나올 때부터 사용해오던 청색 포장지를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동양제과 김무균 차장은 “초코파이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진취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빨간색 포장으로 바꾸었다”면서 “요즘 빨간색이 유행하면서 매출도 늘고있다”고 말했다.
웅진식품의 ‘빛고은팥’, 해태음료의 ‘큰집 대추’ 등 건강음료들도 붉은 색을 메인 컬러로 활용한다. 예부터 건강식으로 활용해온 대추와 팥이 붉은 색인 데다 ‘정열’ ‘열정’ 등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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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이고 세련된 블루(blue)〓대표적인 차가운 색이며 바다, 물의 색깔인 파란색은 세련된 이미지를 풍긴다. 젊을수록 좋아하기 때문에 젊은층 공략용으로 활용된다.
한국코카콜라는 5월 중순 탄산음료 ‘블루스프라이트’(Blue Sprite)를 내놓았다. 경쟁상품인 칠성사이다의 그린 패키지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국코카콜라는 4회에 걸친 소비자 취향 조사를 통해 그린은 안정되고 차분한 이미지나 나이 든 사람을 연상시키고 블루는 차갑고 세련되나 젊은 세대를 연상시킨다는 조사결과를 얻었다. 이에 따라 용기의 색깔을 기존 그린에서 블루로 바꿨다. 10대와 20대 소비자를 중점 공략하겠다는 포석이다.
오리온제과의 간식용 과자 ‘핫브레이크’도 진한 파랑 포장으로 젊음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밖에 고급 양주 조니워커의 ‘블루 라벨’ 등에서 보듯 파란색은 고급 이미지를 드러낸다. 롯데제과가 고급 초콜릿 ‘엑소’를 파란색 패키지에 담은 것도 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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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색(色)은 없다〓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색깔이 식음료에 도입되고 있다. 해태음료의 노란 콜라가 대표적. 콜라는 검은색이라는 인식에 반기를 들면서 젊은층에서 인기다.
제일제당 뚜레쥬르에서도 최근 흰색 일색이던 식빵에 딸기, 포도과즙을 넣은 빨간색, 보라색 식빵을 내놓았다. 특히 딸기 식빵은 최근 ‘붉은 색 열풍’과 맞물려 반응이 좋다는 게 뚜레쥬르의 평가.
빨간 맥주, 초록 맥주, 보라 맥주 등 천연색 맥주가 등장하면서 맥주도 호박색 일색에서 벗어났다. 과일 원액과 생맥주를 일정 비율로 섞은 컬러 생맥주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퓨전 맥주 전문점들도 늘고 있다. 빨간 맥주 ‘레드락’은 물론 그린 생맥주, 커피 생맥주, 한방 생맥주 등 독특한 색과 맛을 갖춘 맥주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하얀색 또는 메밀색이 전부였던 국수에도 녹색, 갈색, 노란색, 분홍색 제품이 선보였다. 녹차 해초 계란 등 색깔 있는 원료를 첨가해 색깔은 물론 건강을 고려한 기능성 국수로 변신한 것. 청정원의 ‘수라 국수’, 동원 F&B의 ‘보성산 녹차를 넣어 빚어 만든 맛깔스런 국수’ 등이 있다.미국에서는 보라색, 초록색 케첩이 판매될 정도로 식음료업계의 색상 파괴 바람은 국내외에서 거세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