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일간지 경제기사로는 파격적인 방대한 분량의 장기 시리즈를 마치고 나니 무거운 짐을 벗어 내린 느낌입니다. 팩트(사실)나 표현에서 한 치의 오류나 실수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 이야기’여서 부담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춰 한국경제를 이끄는 CEO들을 조명하고 그 중요성을 환기한다’는 취지를 달성했고 경제계에 미친 파장도 컸다는 격려도 받아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선 취재과정 및 기사가 나간 뒤의 다양한 에피소드부터 시작할까요.
-이번 시리즈에 소개된 CEO들은 주변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동안 ‘축하 전화’ 받기에 바빴다는 경영자도 많았습니다. 특히 지방 출신들은 고향이나 동창들 사이에서 바로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현대산업개발그룹 계열사인 현대역사(驛舍)의 김판곤(金判坤) 사장은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저명인사가 됐습니다. 모교인 서산농고에서 기사를 보고 서산 시내에 ‘자랑스러운 동문’이라는 플래카드를 1주일이나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내실 위주의 경영으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부 ‘알짜기업’의 경영자들도 친구나 친지들이 “그렇게 ‘출세’한 줄은 몰랐다”며 다시 쳐다보더라는 말을 하더군요.
-주요 그룹의 이공계 출신이나 이른바 ‘비(非)명문대 출신’의 한계를 노력으로 극복하고 CEO에 오른 ‘자수성가형’ 경영자들은 특히 눈길을 끌었죠.
-시리즈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CEO들은 자신이 소개되는지,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총수로부터 ‘새내기 사원’까지 거의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꼼꼼히 읽어보고 참고했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죠.
-기사에서 능력을 평가받았던 경영자 중 기사 게재 직후 승진하거나 영전한 케이스가 적지 않습니다. 가령 LG그룹에서는 ‘그룹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소개된 강유식(姜庾植) 구조조정본부장이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김종은(金鍾殷) 정보통신사업총괄 부사장도 사장으로 올라섰습니다. 또 성공적인 외부영입 케이스로 보도된 이강원(李康源) LG투자신탁운용 사장은 외환은행장으로 발탁됐죠.
-기사가 나간 직후 각 그룹 임원회의에서 화제는 단연 이 기사였다고 합니다. 그룹 이미지나 리더십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돼 임직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었습니다. CEO들이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 데 참고도 됐다고 하더군요.
-주주나 고객들로서는 평소 알기 어려운 CEO의 걸어온 길이나 경영 스타일을 아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는 호평이 많았습니다. 하긴 ‘CEO 주가(株價)’란 말까지 나오는 세상 아닙니까. 대기업과 거래하는 부품업체 등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업 임직원들도 자기 CEO의 경영 스타일과 특징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직접 모시고 일한 분들 외에는 우리 그룹 CEO라고 하더라도 이름만 알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CEO들의 ‘별칭’은 화제가 됐습니다. 가령 동원F&B 박인구(朴仁求) 사장의 ‘아이디어 뱅크’나 동원식품 김상국(金相國) 사장의 ‘참치회 전도사’, 동원EnC 강병원(姜秉元) 사장의 ‘그룹 내 최고 마당발’ 등의 표현은 동원그룹 내에서 거의 ‘공식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최고경영진의 내부 서열과 예우에 얼마나 민감한지 실감했습니다. 여러 차례 내부조율을 거친 사진 및 표 게재 순서가 잘못 나가지 않도록 사전에 신신당부하더군요.
-CEO 개개인에 대한 기사분량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까. 일부 그룹에서는 ‘차세대 리더’ ‘실세(實勢)’ 등으로 소개된 임원의 명단을 홍보임원이 총수에게 갖고 가 직접 ‘검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든 기업에서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부분은 대주주 일가 관련 내용이었죠. 이번 시리즈가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 쪽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지만 역시 그랬습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주주(고문)인 현대중공업의 한 중간간부는 “정 고문 이야기가 주요 테마로 다뤄지면 내가 창문으로 뛰어내리겠다”며 ‘애교 섞인 협박’을 했습니다.
-삼성도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보 관련 사항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LG 역시 양대 창업주 가문인 구씨-허씨 관계에 신경을 가장 많이 썼지요.
-대부분의 기업에서 임직원들이 미리 동아일보에 와 기다리다가 저녁에 초판 신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회사로 보내 표현 하나까지 체크했습니다.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유 있는 로비’도 치열했죠. 일부 기업의 경영자는 체면을 무릅쓰고 사전에 자신이 쓴 책 등을 취재기자에게 보내면서 직접 PR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전에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급변한 기업환경과 CEO 세대교체를 감안하면 동아일보의 이번 시리즈는 사실상 무(無)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거든요.
-기자들의 취재력 및 열정과 함께 특히 시리즈 초반부에 소개된 삼성 LG SK 등 핵심 그룹들이 시리즈의 취지를 이해하고 관련자료 제공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점이 시리즈가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핵심 그룹의 CEO가 소개되고 재계에서 이번 시리즈가 화제가 되면서 처음에는 다소 주저하던 다른 기업들도 기초자료 제공 및 인터뷰 요청에 대부분 적극 도와주었죠.
-사실 각 기업 홍보담당 임직원들의 노고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자신들도 정확히 몰랐던 모든 경영자들의 나이, 출신 지역 및 학교, 주요 경력, 심지어 한자 이름까지 착오 없이 챙기는 ‘작업’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거든요. 다행히 기사가 나간 뒤 대부분의 기업에서 경영진들로부터 “수고했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오너 출신 CEO가 ‘대외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일부 기업 홍보팀은 특히 전전긍긍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빼고 하면 안 되느냐”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통신업계의 일부 임원들은 통신분야가 그룹 내 핵심사업으로 떠올랐는데 다른 계열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지 못해 섭섭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중소·벤처기업이나 공기업 경영진들은 부러움과 아쉬움이 섞인 표정이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 이어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유망한 기업의 CEO들을 소개해 사기를 북돋우는 시리즈를 연재했으면 하는 바람도 많았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나간 뒤 다른 언론매체에도 CEO 관련 기사가 급증했습니다. 기업 관계자들은 “다른 언론사에서는 ‘한방 맞았다’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전하더군요.
-특히 경제계에 ‘동아일보가 기업을 이해하고 경제기사도 강하다’는 이미지를 확산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요.
-시리즈 취지가 국부(國富) 창출의 핵심 주역이면서도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에 짓눌려 그늘에 가려져 있던 대기업의 CEO, 특히 전문경영인들에 대해 ‘따뜻한 시각’으로 조명해보자는 것이었던 만큼 가급적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실 한국의 대기업이 사회 기여도에 비해 지나치게 매도되고 비난받았던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 개선할 과제도 있지만 최소한 반(反)기업 및 반기업인적 정서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데는 상당한 공감대가 마련된 것이 아닐까요.
-어쨌든 이번 시리즈가 기업에 몸담고 있는 경영자나 ‘미래의 CEO’를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 분발을 위한 하나의 촉매제가 됐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2002 대기업 리더들’ 취재팀 종합
◆경제계 평가
경제계에서는 ‘2002 대기업 리더들’ 시리즈가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주요 기업을 움직이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인간적 면모와 성공 비결을 보여줌으로써 고객, 주주, 임직원, 경영진 사이의 벽을 허물고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 특히 기업을 실제로 움직이는 전문경영인에 초점을 맞춘 미래 지향적인 시리즈라는 점을 높이 샀다. 국내에도 훌륭한 CEO가 많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점도 성과로 꼽혔다. 다음은 주요 경제단체 및 그룹 고위관계자들의 평.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상근부회장〓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CEO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던진 매우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인간적 성향과 성공 비결까지 심도 있게 다룬 점이 돋보였다.
▽김효성(金孝成) 대한상의 상근부회장〓국내 대표 기업들의 성장사와 구조조정 과정, 기업별 장점, 기업의 리더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특히 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오너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들의 역할이 막중했음을 일깨워줬다.
▽조남홍(趙南弘) 경총 상임부회장〓기업문화에 대한 국민의 정확한 이해를 높이고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일부 왜곡된 시각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경영진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국가경제 및 투명경영에 대한 책임감을 한층 높였을 것이다.
▽조건호(趙健鎬) 무역협회 상근부회장〓고객이나 주주들은 물론 직원들조차 자기 회사의 CEO가 어떤 경력과 경영 스타일을 가졌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시리즈는 고객, 주주, 직원과 경영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기여했다.
▽김영수(金榮洙) 중소기협중앙회장〓세계화 개방화에 따라 가족 중심의 대기업 경영이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앞으로 중소기업에서도 성공적인 전문경영인의 사례를 많이 발굴해주길 바란다.
▽이순동(李淳東)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실물경제의 주축인 기업을 누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기업경영과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최초의 기획물이었다. 여기에 조명된 기업체 리더들에게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노종(李魯鍾) SK그룹 전무〓국내에도 훌륭한 CEO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 감명 깊은 시리즈였다. 그동안 경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해외 유명 CEO만 부각되고 국내 사정은 무시된 것이 사실이었다. 경영학자들도 국내 CEO들의 성공 사례를 많이 연구했으면 좋겠다.
▽정상국(鄭相國) LG구조조정본부 상무〓기업과 경영자를 소개하는 기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과거보다 미래의 주역에 초점을 맞추고 CEO들의 성장과정, 경영 스타일, 일화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알게 됐을 것으로 본다.
‘2002 대기업 리더들’ 취재팀
◆취재팀 명단
▽팀장〓권순활 경제부차장
▽팀원〓신연수 이병기 김동원 김광현 김태한 이명재 천광암 황재성 송진흡 신치영 하임숙 이헌진 박정훈 고기정 최호원 김승진기자(이상 경제부)
박원재기자(일본 연수 중)
▽알림〓그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된 ‘2002 대기업 리더들’ 시리즈의 모든 기사는 동아닷컴의 ‘연재기사목록’ 코너(www.donga.com/news/moeum.html)를 통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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