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상품특집]LG생활건강 공장-태평양연구소 르포

  • 입력 2002년 7월 8일 18시 50분


태평양 화장품 연구소 ‘안전성 연구팀’의 연구원이 피부의 수분과 지방 상태 등을 정밀 측정하고 있다. [사진제공 태평양]
태평양 화장품 연구소 ‘안전성 연구팀’의 연구원이 피부의 수분과 지방 상태 등을 정밀 측정하고 있다. [사진제공 태평양]
《활기찬 공장의 모습은 삶의 의욕을 북돋운다. 현장의 생명력을 전하기 위해 4일 새벽 서울을 출발해 LG생활건강의 충북 청주공장과 태평양의 경기 용인 화장품연구소 및 인근 공장을 둘러봤다. 공장을 견학하다 보면 하나의 물건이 소비자의 손에 닿기까지, 그 복잡한 과정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에 감탄하게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평소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던 생활용품과 화장품에는 끊임없는 혁신의 노력과 첨단 과학기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충북 청주 LG생활건강 액체세제 공장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있다.

약 30개의 생산라인에서 만드는 제품 종류는 400개. 한 라인에서 10여 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만드는 셈이다. 샴푸를 만들다가 잠시 멈추고 내부를 세척한 뒤 같은 라인에서 린스를 만드는 식이다. 4, 5년 전만 해도 한 라인에서 생산 품종이나 규격을 바꾸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96년부터 샴푸 라인을 시작으로 작업 공정에서 비효율이 생기는 ‘병목지점’을 찾아내 개선하는 혁신운동을 추진한 결과 교체 시간은 약 20분으로 줄었다. 정말 밥 먹을 시간이면 다른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

충북 청주의 LG생활건강 공장 샴푸라인에서는 품목을 지정하기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교체 생산한다. [사진제공 LG생활건강]t>
청주공장에는 액체세제 분말세제 치약 기저귀 화장품 등 총 5개 공장이 있다. LG생활건강이 생산하는 생활용품은 주방세제 샴푸 헤어젤 섬유유연제 치약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화장품도 1000종이 넘는다. 기자가 만난 10여 명의 현장 관계자 중 누구도 자신있게 청주공장에서 몇 종류의 물건을 생산하는지 대답하지 못했을 정도다.

주문에 맞춰 기계가 멈추는 시간을 최소로 줄이면서 수천 종의 제품을 번갈아 생산해 내는 능력이 효율성과 경쟁력의 관건이다.

소용량 ‘퐁퐁’을 생산하던 라인이 대용량 ‘퐁퐁’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멈췄다. 내용물은 같지만 용기가 바뀌어야 하고, 그에 따라 노즐의 높낮이도 조절해야 한다. 1㎜라도 어긋나면 불량품이 나온다.

예전에는 사람이 앞 뒤 옆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맞췄다. 숙달된 사람이라도 13분이 걸렸다. 지금은 ‘원터치’ 방식으로 공정이 개선돼 제품 종류를 표시한 버튼만 누르면 규격이 교체된다. 걸리는 시간은 5초.

샴푸를 린스로 바꾸는 등 생산품목을 교체하기 위해 내부를 세척하는 일도 과거에는 일일이 양동이를 대고 물을 뿌린 후 하수구에 버렸다. 요즘은 자동으로 물을 분사한다. 4시간 여가 걸리던 교체작업 시간이 30분으로 줄었다. 주문량에 빨리빨리 대응할 수 있게 돼 재고와 재고 관리비용이 크게 줄었다.

화장품 업체 태평양의 화장품 기술 연구소에서는 피부조직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부터 나노 테크놀로지에 대한 산학 협력까지 이뤄지고 있다. [사진제공 태평양]
기초화장품을 주로 생산하는 태평양의 경기 수원공장도 ‘다품종 소량생산’에 맞게 생산공정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공장에는 21개의 생산라인에서 견본품을 제외하고 한 달에 580여종의 제품 340만개가 생산된다.

생산라인은 직선형과 U자형의 2종류가 있다. 직선형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품목을 담당하고 곡선형은 한 번에 5000개 이하만 생산하는 소량 생산용이다. 많게는 하루에 한 라인에서 5번까지도 제품이 바뀐다. 교체시간은 평균 15분. 이를 한 자릿수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기나 반기 단위로 세우던 생산계획을 이제는 1주일 단위로 세운다. 이를 더 줄여 ‘3일 생산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품목 교체에 들어가는 시간을 단축하는 외에도 각 기계의 활용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활동을 함께 추진했다.

용기에 치약 내용물을 넣는 ‘주입 기계’는 당초 제조회사가 최대 가동성능을 1분에 60개라고 했지만 현재 1분에 70개씩 주입하고 있다. 냉각속도 등 13가지의 병목지점을 찾아내 해결한 덕분이다.

LG생활건강의 라끄베르
LG생활건강 청주공장 생활용품사업부 생산팀 김동열 차장은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제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생산관리’의 혁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물, 기름, 돌가루 등을 섞어 피부에 가장 잘 맞도록 한 게 화장품이죠.”

4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읍에 있는 태평양의 화장품연구소 강학희 상무는 화장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섞다니?’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연구소 구석구석을 견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3000여 평의 연구소는 기름과 돌가루(무기질)가 서로 잘 섞이도록 하기 위해 온갖 첨단기술을 동원했다. 무수히 많은 화장품 원료 가운데 가장 적합한 혼합비율도 연구하고 있었다.

태평양의 아이오페
특히 발랐을 때의 감각, 냄새 등을 미세하게 구별하는 감성(感性)공학은 화장품 제조에서 빠질 수 없는 대목.

이 연구소 안전성연구팀 이해광 책임연구원은 “피부과학과 생명공학을 모르면 화장품을 제대로 만들 수 없다”면서 “20만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에서부터 방앗간 시설까지 온갖 설비들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차세대 최첨단 기술인 나노기술을 반도체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분야가 화장품 제조라는 점도 신기했다. 나노는 10억분의 1m의 크기. 물질을 원자보다 조금 큰 수준으로 분해해 가공하는 게 나노기술이다.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는 이 연구소 나노텍팀 한상훈 팀장은 “자갈밭(피부)에 공깃돌(기존 화장품 분말)을 뿌릴 때와 모래알(나노 단위로 쪼갠 화장품 분말)을 뿌릴 때를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손톱과 같은 성분의 죽은 세포가 25겹〓가량으로 쌓인 표피. 나노 크기로 자른 피부 활성물질이 표피를 통과해 진짜 피부(진피)에 작용하도록 하는 과정을 한 팀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첨단기술이 동원되면서 화장품과 의약품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질 정도로 화장품 제조기술은 발달하고 있다.

강 상무는 “나노기술을 응용한 타깃 화장품은 요격 미사일처럼 피부 노화의 주범인 멜라닌 생성세포만을 공격한다”면서 “바르면 주름이 펴지는 등 피부 노화를 막거나 되돌리는 화장품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석박사급 연구인력만 250여명. 매년 매출액의 5%인 500억원 이상을 연구비로 쓰는 이 연구소는 국내 화장품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개발센터다.

제품개발 뿐 아니라 생산공정에도 첨단기술이 도입된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LG생활건강의 청주공장 분말세제공장에는 세계적 기술이 적용됐다.

세탁세제 ‘하이타이’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세제의 은은한 향만 없으면 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 생산성은 기존 공장에 비해 오히려 300% 늘었고 전력소비는 75% 줄었다.

이는 96년 회사 기술진이 독자 개발한 ‘공정 파괴’에서 비롯됐다. 물을 많이 쓰는 기존 공정 대신 물을 안 쓰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덕분. 이로써 폐수 등 각종 오염물질이 사라졌고 화재나 누전 등 산업재해도 꼬리를 감췄다.

세탁용품생산팀 주창근 부장은 “먼지 하나 없는 이 공장을 누가 가루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보겠느냐”면서 “분말세제 공장으로 이만한 수준은 없다”고 자신했다.이 회사 중앙물류센터의 자동화 설비도 업계 최고 수준이다. 4200평 바닥면적에 27m 높이로 지은 물류센터는 1200여 종의 상품을 자동으로 분류해 쌓아놓고 언제든 필요한 만큼 꺼내오는 자동화 창고. 천장까지 재고가 쌓인 창고를 훑으며 먼저 들어온 물건을 먼저 꺼내오는 선입선출(先入先出) 방식에 따라 물건을 찾아오는 설비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꺼내놓은 물건을 트럭까지 옮기는 무인 운반차도 마치 로봇처럼 움직인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매일 11t 트럭 150∼200대 분량의 제품이 전국 700여 곳에 수송된다.물류센터 김선종 팀장은 “92년 국내 최초로 적용한 기술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한 수준”이라면서 “한 때는 1년에 2000명 이상이 벤치마킹을 하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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