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현 정부 출범 후 권력과 벤처기업이 결탁한 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권 핵심부 인사들이 “최소한 과거처럼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해온 것이 허구로 드러나면서 정경유착 비난 등 ‘불똥’이 재계로도 튈 것을 우려했다.
수 차례에 걸쳐 김씨에게 16억원을 준 것으로 드러난현대그룹은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현대는 내부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했으나 결국 ‘무대응이 상책’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특히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의 계열분리로 덩치가 크게 줄어들었고 가뜩이나 현 정부 출범 후 대북(對北)사업과 기업인수 등을 둘러싸고 적잖은 의혹을 받아와 여론이 나빠질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한국적인 상황에서 실력자가 요구해올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김씨가 현대 측에서 돈을 받은 98년과 99년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도 아직 현대그룹에 속하던 시절. 그러나 계열분리된 이들 그룹은 “우리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면서 발을 빼고 있다.
99년 12월 김씨에게 5억원을 준 것으로 드러난 삼성그룹 측도 “할 말이 없다”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삼성이 한창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아들에 대한 불법자금 제공이란 악재(惡材)가 불거지면서 그룹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삼성 일각에서는 “돈은 돈대로 뜯기고 욕까지 먹는다”며 허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계 인사들은 “최근 기업들이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가능한 한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이번 사안처럼 최고 실력자에 가까운 사람이 요구해올 경우 액수를 깎을 수는 있지만 요구를 100% 거부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또 이번과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돈을 주었더라도 그것은 특별한 대가 없는 ‘보험’ 성격이었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이 자금출처 등 기업의 투명성 논란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일부 대기업이 김씨에게 준 돈이 회사 공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주주대표 소송 등을 제기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홍업씨 수사 일지 | |
2002.2.4 | 차정일 특별검사팀, 김성환씨 소환 |
3.8 | 특검, 김성환씨 비자금 수십억원 발견. 김씨 잠적 |
3.25 | 특검, 김성환씨 수사자료 대검 이첩 |
4.1 | 대검 중수부 수사 착수. |
5.4 | 김성환씨 알선수재 혐의 구속 |
6.1 | 이거성씨 알선수재 혐의 구속 |
6.11 | 유진걸씨 변호사법 위반 혐의 구속 |
6.19 | 김홍업씨 알선수재 혐의 등 구속. 검찰 수사 축소 의혹 본격 수사 착수 |
6.26 | 김병호씨 자진 출두. 심완구 울산시장 뇌물수수 혐의 구속 |
7.6 | 신승남 김대웅씨 소환 |
7.10 | 김홍업씨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