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에서는 공과금을 받지 않습니다. 납부 신청서를 작성해 고지서와 함께 봉투에 넣어 무인접수기에 넣어주십시오. 그런데 외환은행 계좌는 있습니까?”
박씨가 “외환은행 계좌가 없다”고 하자 은행 직원은 다른 은행으로 가보라고 했다. 외환은행 통장이 없는 사람의 공과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
박씨는 “재산세 고지서에 전국 은행 본지점이 납부장소로 나와 있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은행원은 제도가 바뀌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박씨는 할 수 없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은행에 가서 재산세를 냈다.
일부 시중은행 지점에서 전기료나 재산세 등 각종 공과금을 받지 않아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은행측이 구청, 한국전력 등 공과금 부과 기관에서 받는 대행처리료가 은행원 인건비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이유로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
▽‘손해보는 장사는 할 수 없다’〓외환은행은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계동지점 등 전국 21개 지점 창구에서 각종 공과금을 가능한 한 받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측은 “수납처리에 드는 원가가 건당 600∼2000원이지만 대행수수료 수입은 200원도 안 된다”며 “공과금을 받지 않는 지점을 점점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신 자기 은행 고객에 한해 통장에서 출금하는 조건으로 무인접수기를 통해 공과금을 받아준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납입 영수증을 현장에서 받지 못한다. 따라서 각종 공과금 납입증명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한다.
나머지 은행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248개 전국 점포에서 ‘공과금 바로 맡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국민은행 통장을 가진 고객이 지급 의뢰서와 고지서를 무인 접수기에 넣으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영수증은 우편으로 고객에게 보내진다. 급하게 공과금 영수증이 필요하거나 국민은행 통장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인 셈.
조흥은행과 신한은행도 자기 은행에 통장을 개설한 고객을 대상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공과금 부과 기관은 진퇴양난’〓서울시와 한국전력 등 공과금 부과기관들은 은행들의 손해를 인정하면서도 은행들이 충분한 홍보 없이 창구 접수를 거부하는데는 수수료를 올리기 위한 ‘실력행사’의 성격도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는 수수료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시민 부담이 커지고 물가상승을 초래한다는 점 때문에 일단 백지화한 상태.
이성선(李成善) 서울시 세무운영과장은 “공과금 수납약정에 타행 고객의 공과금을 받지 않을 경우 벌칙을 주는 조항이 없다”며 “공과금을 인터넷이나 자동이체를 통해 내도록 홍보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