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공정위 조사내용에 억울한 점이 있어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넘어가더라도 ‘괘씸죄’에 걸려 다음에 더 큰 곤욕을 치르기 때문이죠.”
A씨는 과거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항변을 했다가 공정위의 담당 국장과 과장이 상사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연쇄적으로 기업에 불이익이 돌아온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최근 미국 기업들의 분식회계 사건 후 기업활동에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6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경영자포럼 강연에서 “공정위의 조사발표에는 미국 기업들의 회계 파동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발(發) 분식회계 파문이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가의 단기관리에만 신경 쓰게 한 스톡옵션제도의 한계도 드러났다. 이런 측면의 제도적 보완은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을 무작정 옹호할 생각도 없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 제고는 여전히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더구나 공정위나 국세청이 눈을 부라리며 나서 샅샅이 뒤지다보면 적지 않은 ‘실적’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현재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 및 기업주를 옭아매는 규제강화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현실적 우선 순위를 감안하면 아직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규제완화 쪽에 훨씬 더 무게를 두어야 할 때다.
솔직히 말해 보자. 한국에서 공정위와 국세청 등의 조사가 자주 도마에 오르는 핵심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 기관들이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의 ‘입맛’에 따라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고 마음에 안 드는 기업에 걸핏하면 칼을 휘두르고 겁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조사의 ‘합법성’은 본질적 정당성과 권위를 가지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이번 공정위의 6개 그룹 조사만 해도 그렇다. 정부 측은 ‘상시적 점검’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사시기와 배경 등을 종합하면 정부에 대해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경제계에 대한 ‘길들이기’ 성격이 짙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앞으로 정부조직개편 논의를 앞두고 현 정권에서 부쩍 이미지가 실추된 공정위의 존재 의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 구축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규제완화와 민영화, 세계화의 흐름은 현시점에서 한국경제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기업과 기업인의 일부 문제점이 경제계에 대한 권력의 압력을 강화하는 구실로 악용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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