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악용실태-대책]250억 버는데 세금은 '0'

  • 입력 2002년 8월 19일 19시 03분


국세청이 처음으로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에 세무조사라는 ‘메스’를 들이댄 것은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탈세 단속은 해당 국가와 긴밀히 협조해야 하므로 그동안 조세행정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 특히 외환자유화 이후 해외 금융거래가 크게 늘면서 조세피난처에 역외(域外)펀드를 만들어 세금을 탈루하는 수법이 더욱 다양하고 교묘해졌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대규모 세무조사를 통해 역외펀드의 실체를 밝히고 탈세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탈세 유형〓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오른 65개 법인과 개인 중에는 조세피난처에 역외펀드를 만든 기업 및 금융전문가가 많이 들어 있다. 조사대상에는 일부 상장·등록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서울 A기업 대표 김모씨는 1999년 3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위장 역외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가 한국 벤처기업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를 헐값으로 인수하는 수법으로 3개월여 동안 250억원의 시세 차익을 냈다.

만일 김씨가 국내 펀드를 통해 CB를 인수했다면 유가증권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 등 175억원을 내야 하지만 조세피난처의 위장펀드를 이용했기 때문에 결국 세금을 빼돌릴 수 있었다는 것.

또 B기업 대표인 이모씨는 한국에서 벤처캐피털 업체를 설립한 데 이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6, 7개의 역외펀드를 세웠다. 이 펀드는 국내 관계사의 주식을 사들인 후 되팔아 15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등 모두 135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기회에 뿌리뽑겠다”〓국세청은 이날 세무조사 발표와 동시에 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수십여명의 국세청 직원들이 한 달간 투입되는 대규모 기획조사다. 한상률(韓相律) 국세청 국제조사담당관은 “기업들이 죄 의식이 없을 정도로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가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또 세무조사와 별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운영하는 ‘유해(有害)조세경쟁포럼’에 학계와 경제단체의 전문가를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침이다. 이 포럼은 현재 바하마 등 28개 ‘조세피난처 국가’로부터 2005년까지 유해조세제도를 폐지하고 정보교환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이 포럼 참가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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