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섹스 행위엔 종족번식 본능과 쾌락 추구의 본능이 합쳐져 있다. 그 점이 더할 수 없이 오묘하다. 인간의 성기는 기관이자 도구다.
그러나 섹스는 역시 쾌락을 불러오는 주술 행위에 치우쳐 있다. 쾌락의 도구로서 섹스를 누리기 위해 문명의 이기는 많은 혜택을 주었다. 임신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맘껏 섹스를 즐기기 위해 각종 피임약과 기구가 생겨났다. 쾌락 추구의 롤러코스터는 멈출 줄 몰랐고 방종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 끝간 데에 에이즈가 있다. 20세기 천형(天刑)이라 불리는 에이즈는 방종의 대가 치고는 치명적인 것,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벌이다. 세기말 인간의 쾌락추구사가 빚어 낸 비극을 결집해 보여주는 상징이다. 가수 프레디 머큐리, 영화배우 록 허드슨 등 많은 유명인이 에이즈에 생명을 바쳤다. 설마 그들이…남들 얘기처럼 들리던 에이즈의 소문이 마침내 우리 일상 이야기로 확인된 것이다.
인간의 두뇌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성의 통제를 받기 거부하는 하반신의 제왕, 그 성기라는 도구가 에이즈가 창궐하는 이 시대엔 어떤 식으로 표현될까? 에이즈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두 편의 공익광고를 보자.
미국 광고사 포리트 리코의 광고에는 권총의 탄환 하나가 클로즈업으로 포착되었다. 그 밑에 카피 두 줄.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페니스”, 그리고 전화를 하면 무료로 콘돔을 나누어 준다는 내용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탄환의 모양이 마치 남자의 그것과 닮았다. 콘돔없이 성행위를 했을 경우 목숨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남자의 성기와 형태가 비슷한 사물을 이용해 표현했다. 사물의 속성을 이용한 구조를 활용했기에 별다른 장치없이도 눈에 들어온다. 조잡한 표현일수록 현란한 수식에만 기대는 법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암리라티 푸리스 린타스 폴란드 지사가 만든 광고에선 한 여성과 섹스를 나누다 죽음에 이르는 남자의 모습이 해골로 표현되어 있다. 난잡한 성행위에 휩쓸릴 경우 여성의 몸에 삽입하는 순간 땅 속에 묻혀 뼈만 남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검은색 바탕에 버려진 듯 놓여 있는, 한창 죽음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뼈와 살의 모습이 섬뜩하다. 죽음이란 주제의 에이즈는 곧 주체의 죽음을 뜻한다는 이중적 의미로 읽혀지는 헤드라인(AIDS, It’s a dead subject)의 글씨체 역시 검은색이 좀먹은듯이 표현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남녀의 성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물학적 기관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젠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까지 바뀌어 왔다. 그것은 인간이 섹스라는 것의 본원적 속성, 즉 종족번식을 위한 행위에서 얼마나 멀리 일탈해 있는가를 입증해 주는 예다. 이제 두 성기의 결합은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생명을 죽음에 몰아 넣기도 한다. 생명의 탄생에 관계되는 기관일수록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을 경고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성기 끝에서 나와 성기 끝에서 죽는 희비극이 초래하는 아이러니!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