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사회에서 고향에 따른 친소(親疏)와 인맥, 부작용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무시하고 넘길 수 없을 만큼 중증(重症)이 됐다.
권력형 부정부패로 만신창이가 된 현 정권이 ‘통합의 정치’에 실패하고 무너져 내린 결정적 실책은 공직사회에서 시작된 편중인사였다. 민심이 떠난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인사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면 고위공무원의 지역별 비율 등을 운운하며 “이제 정상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강변했다.
과거 정권의 영남 편중인사는 분명히 잘못이었다. 이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현 정권의 인사정책이 ‘해도 너무 했다’는 것은 공직사회를 들여다 본 사람은 다 안다. 능력 및 경력과 무관하게 단지 출신지에 따라 ‘양지와 음지’가 극명하게 갈리고 가슴에 한이 쌓인 관료가 어디 한 둘인가.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어떤 조직, 어떤 직급이든 ‘힘있는 자리’는 독식해 놓고 “편중인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기와 무능이다. 하긴 일찍이 로마의 카이사르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고 갈파했지만….
주요 경제부처만 보자.
나라의 ‘돈줄’을 쥔 기획예산처 장관과 기업조사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장은 현 정부 출범 후 모두 호남출신으로 채워졌다. 재정경제부 장관 5명 중 3명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세청장은 이건춘(충남) 안정남 손영래씨(이상 호남) 순이었다. 이 청장 때도 ‘실질적 1인자’는 당시 차장이던 안씨였다. 국세청의 핵심보직인 서울청장, 본청 조사국장, 서울청 1국장과 4국장도 대부분 같은 인맥이었다.
인사 때마다 각 부처에는 승진대상자에 특정지역 출신을 몇 퍼센트 이상 꼭 넣으라는 지침도 내려왔다.
이런 파행이 거듭되면서 ‘성골’이나 ‘진골’이 아닌 공무원 심정이 어땠을까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문제다.
지금 공직사회 분위기라면 만약 정권이 바뀌면 보복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편가르기와 줄 세우기가 또 나타나 내상(內傷)이 깊어질까 두렵다. 유능한 호남 관료들로부터 “현 정부가 인사정책에서 너무 ‘오버페이스’하는 바람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탄식도 들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최우선과제는 능력위주의 공정한 인사를 통한 국민통합이다. 어떤 형태로든 편중인사가 이어지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대선 후보들은 “사람은 출생에 의해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볼테르의 경구(警句)를 깊이 새기길 바란다.
공무원은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사회가 정치바람에 휘말려 증오와 보복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비극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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