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고흐가 자살하기 수 주일전인 1890년 6월 초 그린 작품으로 정확히 100년이 지난 1990년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250만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가격에 일본 제지회사 다이쇼와의 명예 회장인 사이토 료에이에게 팔렸다.
고흐의 손을 떠나 13번 주인이 바뀌면서 6개국을 거친 이 그림의 100년 여정은 현대미술사 그 자체이다. 당시 기성 비평가들의 혹평 경멸 조롱을 받던 고흐가 최초의 모더니스트 화가로 기록되기까지는 미술비평의 역사였다. 1897년 300프랑에 팔린 이 그림이 8250만 달러라는 예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까지는 미술시장의 역사다.
이 그림이 일본에 팔리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반응은 빈정거림 일색이었다. ‘경제동물 일본인’들이 인상파 그림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들인다고 생각했던 것. 미국의 유수한 기업과 미국의 상징인 록펠러 센터마저 일본인 손에 넘어가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미술품도 하나의 상품이며 시장원리에 따라 거래될 뿐이다. ‘무식한 미국의 신흥자본가’들도 19세기말 이후 유럽의 미술품들을 쓸어모았다.
일본인들이 특히 인상주의 그림에 집착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일본 판화가 인상주의에 미쳤던 영향에 대한 자부심 또는 향수다. 당시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 판화에 열광했지만 특히 고흐는 일본 판화를 그대로 베끼고, 한 때 일본 승려를 자처할 만큼 빠져 있었다.
“어떤 점에서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토대를 두고 있다… 프랑스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일본 미술에서 읽을 수 있다”고 얘기할 만큼 고흐와 일본 미술은 뗄 수 없는 고리를 갖고 있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이 ‘퇴폐 예술품’이란 명목으로 압수한 이 그림을 히틀러의 심복인 괴링으로부터 샀던 크라마스키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임대해 줌으로써 만인이 볼 수 있게 해 준데 반해 사이토는 혼자만 즐겼다는 것이다.
아무튼 가쉐 박사의 모습을 빌려 고흐 자신의, 나아가 고뇌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투영한 ‘가쉐 박사의 초상’이 바이엘러 미술관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기를 바란다. 명화의 마지막 정착지는 역시 미술관이다.
김순응 서울옥션대표·경매사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