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의 역사는 길다. 임질의 경우 그 기원이 인류의 시작과 일치할 정도로 오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성생활을 시작하던 시기부터 성병은 별책부록처럼 따라다녔던 셈이다. 1493년 콜럼버스의 원정 때 그 일행이 서인도제도로부터 유럽에 가져오면서 전 세계에 퍼졌다는 매독 역시 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70년대 말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에이즈는 1950년대 말 중앙아프리카의 녹색 원숭이에서 유래해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한때는 매독만으로도 목숨을 잃곤 했다. 그러나 이젠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다. 한가지가 치유되면 또 다른 독종이 출현한다. 비교적 단순한 성병이라는 임질에서 한때 난치병이었던 매독을 거쳐 현재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성병은 난잡한 성생활의 확산에 맞물려 새로운 유형의 난치성 질환을 야기시켰다. 그러므로 성병의 발전사는 인간의 난잡한 성생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성병의 형질은 달라도 아직까지 성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콘돔이다. 가장 일반적인 피임기구로 사용되는 콘돔의 애초의 목적은 성병 예방이었다고 한다. 하나의 형태로 두 가지 목적을 가진 콘돔은 이제 각 가정에, 동시에 각종 유흥업소와 사창가에 비치된 매우 유용한 물건이 된 셈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콘돔을 홍보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산아제한 시기에는 피임기구로 적극 홍보되었고 2001년 현재 4000만명이 보균자이고 3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에이즈의 시대에는 에이즈 예방용도로 홍보되고 있다.
콘돔을 활용한 수많은 에이즈 예방 광고 중 한 편을 살펴 보자. 네덜란드의 퍼블리시스 FCB(Publicis FCB)가 제작한 이 광고는 섹스에 돌입하기 전의 상황을 소재로 삼았다. 첫 번째 세팅은 동성애 관계이다. 한 남자를 뒤에서 감싸 안은 또 다른 남자가 콘돔을 집어 들고 “제가 씌워 드릴까요?”라며 능청을 떨고 있다. 두 번째 세팅은 다른 인종의 이성간의 관계이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흑인 남성에게 백인 여성이 미소지으며 “당신이 뭔가를 착용하면 내가 뭔가를 벗지요”라며 애교를 떤다. 이 공익광고의 슬로건은 ‘나는 안전한 섹스 아니면 섹스를 않겠다(I want safe sex or no se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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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구성이지만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고 있다. 같은 성끼리, 다른 성끼리, 다른 인종끼리 등등 다양한 성적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의 특징을 간결한 에피소드에 실어 표현한 것이다.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크리에이티브답게 벗은 몸을 대담하게 노출시킨 것도 눈에 든다. 우리의 경우처럼 은유적 장치를 통해 섹스를 암시하는 투로 둘러댈 이유가 없다. 섹스는 일상사이기에 일상으로 보여 주는 것 뿐이다. 그 일상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도구는 만화식 구도이다. 벌룬 안에 담긴 카피는 한컷 짜리 만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성적충동에 의해 물불가리지 않고 뒷일을 생각 않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교훈을 한편의 성인만화에 담아 무겁지 않게 표현했다. 어쨌든 섹스는 즐거운 일 아니던가. 즐거운 일을 안전하게 치르자는 계몽인 셈이다.
이제 콘돔은 생필품이다. 지속적인 파트너와는 피임을 위해서, 위험한 관계에서는 성병 예방을 위해서 유효적절하게 쓰인다. 임신으로부터 안전하게, 에이즈로부터 안전하게! 남자의 음경에 씌워지는 그 작은 고무 하나에 이 시대 섹스 생활의 키워드가 집약되어 있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