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 ‘어떻게’ 없는 강남과세 대책

  • 입력 2002년 9월 8일 18시 27분


“아빠, 우리 강남으로 이사가면 안 돼요? 미팅 파트너가 ‘집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 ‘강남에 산다’고 대답해야 애프터 신청을 한다고요.” (대학생 딸)

“우리 아빠가 사장이라고 하지?” (아빠)

“물어보지도 않는데 먼저 그런 말을 어떻게 해요.” (딸)

S그룹 계열사의 잘 나가는 사장이 털어놓은 우울한 일화다.

1. 급속히 진행되는 계층분화

위 얘기가 지나친 과장 같은가? 다른 한 대학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요즘 대학에서는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대신 배경이 비슷한 친구들이 끼리끼리 어울리지요. 강남 출신은 그들끼리, 지방 출신도 그들끼리…. 강남의 카페에서 이뤄지는 모임에 엉뚱한 친구가 우연히 참석할 경우 참 어색합니다. 딱히 누구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이질적인 분위기에 스스로 어찌해야 할 줄 몰라 불편한 거지요.”

이미 우리 사회는 자산층과 그 외 집단 사이에 빠른 계층분화를 겪고 있다. 나아가 기성세대가 모르는 사이 차세대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계층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거품이냐, 명품이냐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1300만원을 넘어서 비강남권의 2배에 이르렀다.

‘강남 거품론’도 무성하지만 강남 아파트는 이제 ‘수도권의 주거 특구’로 자리잡았다는 명품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강남의 대체재 개념으로 공급된 신도시가 주변의 난개발로 인해 주거지로서 가치가 훼손되면서 강남의 차별성은 더 확고해지고 있는 것.

새로운 대체 신도시를 대량 건설하겠다는 것이 이번 정부의 대책이지만 강남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를 대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 같은 강남의 명품화는 계층간 장벽을 더욱 공고히 쌓는 일이다. 월급을 모으고 저축을 해 장벽을 뛰어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3.장벽을 낮추려면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공급부문에서는 교육 및 교통문제가 해결되는 ‘강남급’ 대체 주거지가 개발돼야 한다. 수요부문에서는 보유과세(재산세)를 강화해 부동산 과다보유 유인(誘因)을 없애야 한다.

지난주 발표한 대책 중 ‘미완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부는 ‘보유과세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어떻게’는 밝히지 않았다. 행정자치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며 조세저항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1000만원짜리 중고차에 물리는 자동차세 70만원의 조세저항은 걱정이 안 되고, 강남의 6억원짜리 아파트에 붙는 50만원의 재산세는 조세 저항을 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쩐지 황당하지 않은가?

강남 아파트 문제로 인한 사회적 공분(公憤)이 형성된 지금 이 일을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하겠는가.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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