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론은 작년 9·11 테러 이후 경제전망이 어둡고 미국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도 소더비, 크리스티 등 경매장에서는 오히려 거래가 크게 늘고 작가 30여명의 최고 경매가가 잇달아 경신되면서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올해 7월25일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미술품 경매사상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루벤스의 ‘유아 대학살’이 숨막히는 경합 끝에 7673만달러(약 920억원)에 낙찰된 것이다.
고흐의 ‘가쉐 의사의 초상’(8250만달러), 르누아르의 ‘물랭 드라 갈레트의 무도회’(7810만달러)에 이어 사상 세 번째 비싼 가격이며 인상파 이전 작품으로는 최고가 기록을 2배 이상 경신했다.
9·11 테러 이후 미술시장도 당연히 위축될 것으로 보았던 전문가들을 무색케 했다.
‘미술품가격지수(Mei/Moses Fine Art Index)’를 만든 뉴욕대 스턴스쿨(경영대)의 메이와 모제스 교수는 최근 1875년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4차례의 전쟁과 27번의 경제불황이 미술품가격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전쟁이나 주식시장 붕괴 시 미술품이 자산가치를 보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1차대전 시기인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영국과 미국의 주가는 25% 정도 떨어졌다가 1920년에는 1913년의 94%까지 회복됐다. 반면 같은 기간 미술품 가격은 주가보다 낙폭이 훨씬 적었고 1920년에는 1913년 가격의 125%에 이르렀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영국과 미국의 주가는 전쟁 전인 1937년 수준의 각각 107%, 100%까지 회복된데 비해 미술품 가격은 30% 상승했다.
2000년에도 주가는 떨어졌지만 미술품 가격은 16% 올랐고 2001년 들어 주가가 계속 약세를 보이는 중에도 미술품 가격은 상반기에만 15%의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은 미술시장의 역사가 짧고 실증적인 연구도 전무하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 말 주가가 정점을 지나 하강 곡선을 그릴 때 미술품 가격이 크게 올랐던 기억을 되살리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자산가치 보전을 위한 피난처로 미술품을 보는 시각은 서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세계 공통으로 부동산값 거품과 더불어 주식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박수근을 비롯한 대가들의 작품 값이 강세를 보이면서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soonung@seoulauction.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