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0억 北지원설 3大 미스터리]現代지원 난색 嚴총재 중도 낙마

  • 입력 2002년 9월 26일 18시 56분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900억원을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에 넘겨줬다는 한나라당 주장의 진위(眞僞)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현대상선 현대아산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대북(對北)사업이 최소한 정권측과의 긴밀한 교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현대 및 대북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인사들이 갑자기 물러나는 석연치 않은 일도 있었다.

▽미묘한 뉘앙스 풍긴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 발언〓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경제부총리로 있을 때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정부의 각종 금융지원과 관련해 여운을 남기는 말을 했다.

기자가 당시 “현대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잇따른 지원책이 현대가 햇볕정책의 ‘총대’를 멘 데 따른 ‘봐주기’가 아니냐”고 묻자 진 부총리는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최소한 나는 경제논리로만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경부장관 취임(2000년 8월) 후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해 정부 내 몇 곳에서 알려줄 내용이 있다는 말도 들었으나 안 듣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거부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귀띔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진 전 부총리의 발언은 현대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 자신은 경제적 시각에서만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해 몇 곳에서 재경부장관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는 말은 정권 핵심부와 현대 사이에 대북사업을 둘러싼 모종의 ‘물밑 거래’가 있었음을 강력히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진 전 부총리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현대에 대한 금융지원을 하지 않고 파산시킨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꼭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계속된 정부의 지원이 과연 현대의 대북사업과 무관한지는 의문이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의 조기퇴진을 둘러싼 의문〓엄낙용씨는 재경부 차관을 거쳐 2000년 8월 산은 총재로 부임했다가 불과 8개월 만인 지난해 4월 물러났다. 산은 총재 임기가 3년이고 장관 등 다른 요직으로 영전한 것도 아닌 상태의 ‘낙마(落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이었다.

엄 총재의 ‘불명예 퇴진’을 둘러싸고 구구한 억측이 나돌았다. 특히 그는 평소 정부가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현대에 대한 산은의 지원 확대에도 자주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정권 핵심부로부터 “추진력이 없다”며 견제를 받았다.

현대그룹의 유동성위기가 불거졌던 2000년 말 정부가 부실기업의 회사채를 산은이 떠 안도록 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내놓으면서 정부와 산은 사이의 갈등은 더 심해졌다. 2조3263억원의 인수총액 가운데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등 현대계열사의 몫이 무려 1조7000억원(73.1%)이었다.

엄 총재는 “부실기업의 리스크를 산은이 모두 부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버티다 결국 정부방침에 따랐지만 이때 완전히 실세(實勢)들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 총재는 지난해 11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났을 때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조기퇴진이 정권핵심부와의 마찰에 따른 것이었음을 내비친 바 있다.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의 퇴진〓김 전 현대상선 사장이 지난해 10월 돌연 물러난 것도 대북사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김 전 사장은 작년 4월 이후 측근들에게 “회사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큰일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알짜 회사’였던 현대상선이 경영난에 빠진 직접적 원인이 경제적 채산성이 전혀 없는 금강산관광사업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이 살아나려면 하루빨리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고 현대의 다른 부실계열사 지원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가 “현대그룹이 아무리 어려워도 현대상선을 끌어들이면 함께 망한다. 현대상선만은 독자적 경영을 통해 회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서자 오너인 정몽헌(鄭夢憲) 회장 및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등 대북사업에 적극적인 ‘가신그룹’과 마찰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사장은 현대그룹 내에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현대상선이 주요 주주였던 현대증권 및 현대투신 해외매각 과정에서 매각대금을 둘러싸고 정부 및 대주주방침에 반발한 것까지 겹쳐 돌연 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순활기자 shkwon@donga.com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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