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경제계는 공정위가 서면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몇 가지 점을 들어 강력히 반발해 오던 터였다.
우선 공정위는 조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최근 발표된 주요 그룹들의 결합재무제표를 볼 때 내부거래가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조학국(趙學國) 공정위 사무처장은 “결합재무제표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내부거래 유형과 규모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면서 “상시감시체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자료확보를 요구한 것으로 현장조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들은 내부거래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반박한다. 공정위의 조사계획 문건에도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인용, 4대 그룹의 내부거래비중이 1999년 39.2%에서 2000년 40.2%로 높아졌으나 2001년에는 37.6%로 떨어진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대기업은 공정위의 조사배경이 대통령선거를 앞둔 ‘대기업 길들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사 공정위가 이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해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강도 높은 현장 조사를 기획했다는 것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이 “올해는 부당내부거래조사를 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정책의 일관성도 문제라고 대기업들은 지적한다.
공정위가 현장조사계획을 세워놓고도 이를 감춘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현장조사 계획을 곧바로 밝힐 경우 대기업들의 반발이 더 거셀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 처음에는 “통상적인 서면조사”라고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서면조사를 통해 혐의사실을 확인한 뒤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에 현장조사를 시작한다”고 하면 대기업들이 반발할 명분이 별로 없다.
실제로 공정위는 9월 10일에는 대기업들이 낸 서류와 내부거래 공시내용 간에 다른 점이 있다면서 현장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운’을 간접적으로 뗐다.
‘길들이기’ 논란이 나오는 데는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가 대기업들에 주는 부담감은 적지 않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공정위는 현정권 들어 98년에 두번, 99년에 한번, 2000년에 한번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5대 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했다. 그 결과 20조3155억원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 21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많게는 한번 조사에 그룹당 1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공정위가 ‘칼날’을 세울 때는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