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입장이 바뀐 시점은 엄 전 총재가 청와대 경제장관회의에 이 사안을 보고하고 국가정보원 3차장을 만난 이후여서 ‘정부와 현대그룹간에 뭔가 큰 뒷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000년 당시 급박한 자금난에 몰렸던 현대상선에 4900억원은 아주 큰 돈이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장을 받지 않고서는 현대상선이 만져보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돈을 갚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회생 지원을 약속받았나(?)〓김충식 사장은 당시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 라인에 속했지만 그룹 차원에서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따라서 정부는 실질적 오너인 정 회장과 담판을 가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정부가 채권단을 통해 현대건설 등 유동성위기에 빠져 있던 현대그룹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건설은 2000년 5월부터 자금난을 겪으며 부도위기에 몰렸지만 현대상선과 채권단의 지원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2001년 3월말 기준으로 현대계열사의 금융권 부채는 32조8000억원이나 됐다. 하이닉스반도체 8조3800억원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6조7600억원 △현대건설 4조7100억원 △현대상선 3조3500억원 등이었다.
그러나 어느 한 회사도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았고 채권단의 채무조정을 거쳐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는 현대를 위한 것(?)〓정부는 2000년말 일시적으로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지만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살린다며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수혜자는 현대 계열사가 대부분이어서 ‘현대를 위해 만든 제도’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고 당국자들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총 3조원의 회사채를 인수했는데 이 가운데 현대계열사의 것이 2조4000억원이나 차지하니 그런 말이 나올 만했던 것.
또 2001년에는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건설과 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가운데 한 회사만 살려야지 두 회사를 다 살리기에는 은행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들어 두 회사를 모두 살렸다.
특히 2001년 6월부터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이 외환은행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면서부터는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져 산업은행 지원액은 99년말 425억원에서 2002년 6월말에는 8152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회사채 신속인수 현황 | |||
  | 인수금액 | 회수실적 | 보유잔액 |
하이닉스 | 1조2080억원 | 1조1520억원 | 560 |
현대건설 | 4573억원 | 3489억원 | 1084 |
현대상선 | 6290억원 | 3664억원 | 2626 |
현대유화 | 320억원 | 320억원 | - |
쌍용양회 | 5261억원 | 5261억원 | - |
성신양회 | 1240억원 | 1240억원 | - |
합계 | 2조9764억원 | 2조5494억원 | 4270억원 |
(자료:산업은행)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