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계적 기업 인재 육성법…맥도날드 햄버거대학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6시 07분


올해 2월 호주 시드니 햄버거대학 ‘졸업식’에 모인 아시아 각국 맥도날드 부점장들. 점장이 되려면 햄버거대학에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 세계 3만여 맥도날드 매장의 점장들은 햄버거대학 동문이다. 사진제공=한국 맥도날드
올해 2월 호주 시드니 햄버거대학 ‘졸업식’에 모인 아시아 각국 맥도날드 부점장들. 점장이 되려면 햄버거대학에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 세계 3만여 맥도날드 매장의 점장들은 햄버거대학 동문이다. 사진제공=한국 맥도날드
▼강도가 들어와도 손님처럼▼

지난해 3월 한국맥도날드의 서정민 마케팅 이사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입사 후 4개월이 되도록 그에게 회사의 마케팅 전략 변천사를 이야기해줄 적당한 팀원이 없었다. 팀 내 이직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 개월째 주말없이 밤늦게까지 업무 파악에 몰두했지만 맥도날드의 기본 브랜드를 탄탄하게 하면서도 시의적절한 광고 판촉 전략을 확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가 미국 시카고 인근 오크브룩에 세워진 10만평 규모의 맥도날드 사내 대학 ‘햄버거대학(Hamberger University)’에 들어간 것은 이런 상황에 놓인 때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 대학 부설 ‘국제햄버거마케팅대학(IHMU)’ 과정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110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함께 입교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광고 대행사, 리서치 대행사 임직원들도 다같이 ‘학생’이 됐습니다. 세계 곳곳의 맥도날드 마케팅 전문가들이 교수진이 돼 ‘가상의 나라’를 제시하고 어떻게 마케팅 전략을 짤 건지 토론하는 데서 시작하더군요.”

하루도 쉴 틈을 주지 않는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그러나 ‘실전 마케팅’ 중심의 집중 교육은 매일 “무언가 쌓여간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2주 교육이 끝나자 그에게 가장 큰 자산으로 다가온 것은 110명의 각국 마케팅 관련자들이었다. 서 이사는 귀국 후에도 ‘솔루션’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 문제들은 곧바로 이들에게 국제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내 상의했다.

이후 마케팅 전략은 성공적으로 실행됐다. 특히 광고대행사 레오버넷과 함께 만들어낸 ‘프렌치 프라이’ 광고의 파장은 컸다. 소비자 호응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올해 뉴욕 광고 페스티벌에서 금상까지 수상한 것이다.

●“나는 햄버거대학 졸업생이다”

잭 그린버그 맥도날드 회장에게 학력을 물어보면 “햄버거대학을 마쳤다”고 말한다. 이제는 서 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맥도날드 사람들은 “햄버거대학은 121개 국가에서 3만개의 매장을 만들어낸 맥도날드 확장의 역사를 뒷받침해온 ‘교육 기지’”라고 말한다.

햄버거대학은 61년 시카고 오크브룩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시드니 뮌헨 런던 홍콩 상파울루 도쿄 등 세계 7개 도시에 세워졌다. 이들 도시 외의 지역에도 햄버거대학에 준하는 커리큘럼이 마련돼 있다. 세계 3만여 군데의 모든 맥도날드 점장들이 햄버거대학 출신이다. 지금까지 6만5000여명의 각국 임직원이 이 사내대학을 나왔다.

한국은 87년부터 시카고 햄버거대학에 학생들을 보내왔으며 올해부터는 시드니 햄버거대학에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햄버거대학을 다녀온 한국 직원은 모두 650명.

한국맥도날드 인천공항 지점 부점장인 권영배씨는 지난달 16일부터 1주일간 시드니 햄버거 대학을 다녀왔다. 이 대학을 비롯해 지구상 모든 햄버거대학의 특성은 ‘실제 상황 중심으로 즐겁게 나누는 토론 교육’. 그가 신기해하며 수업 받았던 것도 유리로 만든 ‘가상 매장’ 교육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맥도날드 매장을 유리벽 안에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지요. 안에서는 바깥이 안 보여도 밖에선 안을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거기서 음식도 만들고 서비스도 합니다. 손님 역을 맡는 ‘학생’도 있지요. 그러다가 손님이 햄버거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항의하거나, 콜라병을 떨어뜨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강도가 들거나 단전(斷電) 단수(斷水)가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각본은 여기까지다. 유리 벽 바깥에서 이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들을 지켜본 학생들은 개선해야 할 점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대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상 매장에는 집음기가 있어 모든 소리를 바깥으로 전달하며 통역 박스가 있어 헤드셋만 끼면 한국어로도 내용을 전해듣는다.

강도가 들어왔을 때 대응책은 결코 맞서거나 비명을 지르지 말라는 것. 일단 요구에 응한 다음 보안회사와 연결된 비상연락망을 이용한다. 다른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백선웅 한국맥도날드 교육팀장은 “강도도 일단 손님처럼 대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세계 어디서나 유효한 ‘졸업증’

햄버거대학의 커리큘럼은 직종별, 직급별로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영업직의 경우 직급에 따라 영업컨설턴트클래스(Operation Consultant Class)-부서장클래스(Department Head Class)가 있다.

유제성 한국맥도날드 영업운영팀장은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맥도날드 영업컨설턴트클래스에 영업컨설턴트들을 인솔해갔다. 이들은 1인당 평균 20∼30개 매장의 매출과 직원을 관리하는 맥도날드의 실제적인 야전사령관들. 소지품으로는 밀봉된 서류봉투 하나씩이 있었다. 이들이 매장의 점장들을 대하는 리더십 등에 대해 자기자신과 상사인 영업부장(Operation Manager)들이 평가한 내용이 담긴 설문결과지였다.

봉투를 열어본 영업컨설턴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흥분하거나 침통한 사람도, 웃거나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자신의 장단점을 세세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가상의 컨설팅을 해본다. 이 과정은 비디오로 촬영되며 교수와 함께 컨설팅 내용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자신은 그럴 듯하게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단어 구사나 말하는 태도 등이 어색하거나 너무 심각한 것을 알고 교훈으로 삼게 된다.”

이같은 과정 때문에 영업컨설턴트들은 이 클래스를 위해 반드시 비디오 공테이프를 갖고 간다. 유 팀장은 “아주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햄버거대학의 특색”이라고 말했다. 부서장클래스(DHC)에는 영업부장들에게 불의의 일이 일어났을 경우 자기 자리를 누가 이어받아서 업무에 공백이 없게 할 것인지 석세션 플랜(Succession Plan)까지 짜보게 한다.

교육이 끝나면 반드시 결과 점검이 잇따른다. 점검방식은 다양하다. 신분을 감춘 점검자가 매장에 손님으로 들러보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는 햄버거대학 바깥에서 이뤄지는 가장 실질적인 점검이다.

백선웅 교육팀장은 “이 같은 교육-실천-점검의 순환 과정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고객 만족과 자기개발 두 가지”라고 말했다. 시간제 직원에게도 일대일 기초교육을 시켜 승진의 기회를 주며 일단 부점장이 된 사람은 햄버거대학의 다양한 코스를 통해 자기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백 팀장은 “한국에서 점장을 하던 사람이 호주로 이민을 가서도 맥도날드 매장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며 “결국 햄버거대학의 힘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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