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전망대]'적과의 동침' 못할게 뭐야?

  • 입력 2002년 10월 13일 17시 47분


미국에 코비신트라는 온라인기업이 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합작해 2000년 말 설립한 회사다. 코비신트는 이들 3사의 자재 구입 및 재고 관리를 맡고 있다. 3사는 자재 관리를 코비신트에 맡긴 후 자재비 절감률이 매출액의 7%에 이르렀다. 자동차 한 대 팔면 마진이 2.5%다. 놀라지 마시라. ‘공동구매를 해서 얻는 이익이 열심히 차를 만들어 팔아 남기는 마진의 3배나 됐다’는 뜻이다. 경쟁사들이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다. 프랑스의 르노 및 푸조시트로앵, 일본의 닛산자동차도 부랴부랴 코비신트에 동참해 이제 코비신트의 영업망은 미주 유럽 일본을 아우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삼양사는 유방암 치료제 제넥솔을 설탕업계 경쟁자인 제일제당의 유통망을 통해 팔고 있다. 주류업계 맞수인 OB맥주와 하이트맥주는 500㎖와 640㎖짜리 빈 병을 함께 재활용한다.

석유화학업계는 원료를 사실상 공동 구매하거나 저장하는 방식으로 채산성을 높인다. 전남 여수의 여천단지 입주업체들은 원료 저장용 탱크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충남 서산 대산공단의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은 나프타 등 원료를 넉넉히 비축한 업체가 모자라는 쪽에 꿔준 뒤 나중에 되받는 식으로 제휴하고 있다.

지난 주의 일이다. 현대자동차는 제휴관계에 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 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연간 130억달러에 이르는 부품의 공동 개발 및 구매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3사 구매본부장들은 곧 품목을 선정해 부품의 표준화와 공동 개발 및 구매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완성차 업체의 부품공용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렇지만 협력이 원활치 않아 아직 지지부진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국제시장에서의 부품구매 얘기가 오가고 있다. 현대차의 움직임은 그 작은 예다.

만약 국제적 부품구매가 본격화되면 1만6000여개의 국내 부품업체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재 국제시장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품질인증(QS)마크를 획득한 업체는20개 남짓이다.

기업들은 경쟁사와 치열하게 싸우는 한편 필요하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업체로부터 국내시장을 지키고 △후발업체의 추격을 공동으로 따돌리거나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제적 규모에서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건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격변기에는 더하다. 기업뿐만 아니다. 국가나 개인도 마찬가지다.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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