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경기둔화와 실적하락으로 고민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에 한국 지사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서의 영업 확장을 위해 기술과 인력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통신장비 업체인 한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는 11일 KT가 구축하고 있는 차세대 네트워크(NGN) 사업에 들어가는 핵심 장비 ‘엑세스 게이트웨이’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했다. 최근 전직원의 10%를 감원하고 알카텔과의 합병이 무산되는 등 악재가 겹쳤던 미국 루슨트 본사에는 모처럼만의 좋은 소식.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서 루슨트 주가는 18% 급등했다.
전세계 루슨트 지사를 연결하는 인트라넷에는 계약 사실이 곧바로 주요 뉴스로 올랐으며 루슨트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한국 지사에 축하 전화를 걸기도 했다.
KT 계약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루슨트는 전세계적인 지원 체제를 가동했다. 미국과 유럽의 서비스 유지·보수 지원팀은 한국으로 날라와 KT측과 장비 테스트를 마쳤다. 한국 루슨트에서는 6개월 전부터 NGN팀이 구성됐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원천기술 업체인 퀄컴도 한국 시장을 중시하기는 마찬가지. 올 2월 퀄컴 본사의 요한 로데니우스 수석부사장이 방문한 데 이어 어윈 제이콥스 회장은 6월과 8월 한국을 찾았다.
고위 경영진의 한국행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한국 휴대전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CDMA 로열티 수입이 늘고 있기 때문. 퀄컴은 2000년 초 주당 170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최근 35달러 선까지 떨어질 정도로 전반적인 부진을 겪고 있으나 한국 영업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퀄컴이 한국 기업들에게 칩기술을 제공해서 받는 로열티는 1조 8000억원에 달할 전망.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최근 경남 양산에 630여억원을 투입한 담배 공장을 완공했다. 대규모 흡연 피해 배상 소송이 잇따르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필립모리스는 14일 한국 공장 준공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상승했다. 필립모리스는 한국 현지공장 체제를 갖춘 것이 주가와 매출 상승뿐만 아니라 이미지 제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립모리스코리아의 김병철 본부장은 “연간 80억 개비 정도인 한국 판매량을 현지 생산함에 따라 유통비용을 줄이게 됐으며 200여명의 생산직 근로자를 고용해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