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칠레 FTA 협상 표류]사과-배 파도 넘으니 '금융' 암초

한국과 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판에 ‘복병’을 만나 가서명이 무산됐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차 협상에서 칠레가 ‘금융서비스시장 개방’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은 금융서비스시장 개방은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24일까지 좀더 검토해보고 협정타결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으나 타결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대 걸림돌이 된 ‘금융서비스 개방’〓정부는 그동안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농산물과 공산품의 예외품목 조정에만 매달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금융부문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상대국의 강경한 기본방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가서명을 자신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금융 제외 불가’방침을 밝힌 재정경제부는 금융부문을 빼면 FTA가 아니라 ‘관세자유협정’ 정도로 의미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는 이미 칠레산 사과와 배, 한국산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키로 합의, FTA의 실질적인 의미가 꽤 퇴색한 상태다.

더구나 칠레는 이미 마무리된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에서 금융부문을 포함시켰고 미국과 진행 중인 협상에서도 포함돼 있다. 김성진(金聖眞) 재경부 경제협력국장은 “우리로서는 중국과 FTA 협상을 할 때 칠레와의 협정이 전례가 될 수 있어 금융부문은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과정 이모저모〓외교통상부는 20일까지만 해도 “이번 협상에서 가서명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이날 저녁 국내언론에 “핵심쟁점을 타결하고 협정문안을 작성 중”이라고 말해 ‘사실상 타결됐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이번 협상에서 칠레측은 “다른 국가와의 FTA에서 금융시장은 개방한 적이 없다”며 금융서비스시장 개방 제외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21일 협상팀에 훈령을 보내 ‘금융제외 불가’를 관철할 것을 통보했다. 한국은 “금융부문은 협정 발효 후 나중에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선까지는 물러섰지만 칠레는 이 제안도 거부했다.

양국은 협상 일정을 하루 늦춰 21일까지 계속 논의를 거듭했으나 입장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통상부는 실제 협상과정보다 지나치게 앞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농업 피해 규모도 논란〓양국간 협상에 제동이 걸리면서 일각에서는 “FTA 상대국으로 칠레를 선택한 ‘첫 단추’부터가 잘못”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칠레를 선택한 이유는 △FTA 경험이 많다는 점 △서로 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계절이 반대여서 농업부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 △경제규모가 작아 예상치 않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업 부문에 대한 피해는 과소평가됐다고 농업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농림부와 농협이 현지조사를 한 결과 칠레는 일교차가 크고 기후가 건조해 과실생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 품질관리와 수송체계도 세계적인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칠레 FTA에 대한 긍정론과 비판론 비교
구분	긍정론	비판론
경제적 후생	증가	감소
무역수지	개선	악화
관세인하 혜택	한국산 공산품의 가격경쟁력 상승	관세율이 너무 낮아(내년 6%, 장기적으로 철폐) 가격경쟁력 상승 효과 크지 않음
농업 피해	미미	매우 큼
두 나라 경제구조	서로 보완적	보완성 없음
중남미시장 확대와 관계	거점 역할	원산지규정 때문에 중남미 시장 확대에 큰 효과 없음
FTA 체결 경험 축적	FTA 추진 경험 많고 경제규모 적은 칠레가 적격	농업부문 경쟁력이 없는 국가가 적격
국제정치 국제경제적측면	협력관계 증진	정치적인 협력관계는 증대되지만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정반대방침 지속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