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 ‘꿈과 현실’]③여행레저

  • 입력 2002년 10월 23일 17시 56분



“한국 여행산업이 ‘미래산업’이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19세기형 후진산업’ 같은데요.”

한 여행사 사장이 국내 여행산업에 대해 내뱉은 독설이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 여행산업이 새로운 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증권가에서도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계기로 여행업이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한국의 여행산업은 아직 산업으로서 기본적인 구조도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것. ‘장밋빛 미래’를 점치기에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의 기본이 안 돼있다〓여행 관련 업체 가운데 증시에 상장된 회사는 ‘하나투어’ 단 한 곳뿐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혜택을 볼 종목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호텔신라 등이 거론되지만 이들 종목을 순수한 여행업체로 보기는 어렵다.

왜 상장된 회사가 없을까. 기업을 공개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산업기반을 갖춘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을 분석할 때 기초로 삼을만한 기본 통계자료도 없고, 각 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할 지표도 없다.

전문가들이 꼽는 한국 여행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진입 장벽과 덤핑판매, 그로 인한 경쟁력 약화 세 가지다.

우선 업체 수가 너무 많다. 올해 초 기준으로 일반여행업체 709개, 해외여행업체 3456개, 국내여행업체 3490개 등 등록된 회사만 8000개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할인 항공권이나 각종 여행상품을 덤핑 판매하는 불법 사이트까지 수십 개씩 생겼다.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자연스레 ‘덤핑 경쟁’이 판을 친다. 덤핑 관광상품의 대명사가 된 ‘방콕-파타야 3박5일’의 상품 가격은 고작 30만원대로 원가(50만원)에도 못 미친다.

“당장 가격을 후려쳐 고객을 몇 명이라도 끌어들여야 다음달 사무실 전기요금이라도 낼 것 아니냐”는 한 여행사 사장의 푸념은 후진성을 면치 못한 한국 여행산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덤핑 판매로 이익을 내지 못하니 특색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장기 계획을 세울 여력이 없다. 결국 수백개 회사가 모두 경쟁력 없는 고만고만한 회사로 머물고 있다.

▽대안〓여행산업이 살려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여행사가 죽어야 한다. 지금처럼 8000개 가까운 회사가 경쟁하면 주5일 근무제가 아니라 주3일 근무제를 시행해도 살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색 있는 상품을 개발해 차별화된 경쟁을 시작하는 것도 산업이 사는 데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상품 개발을 전담하는 도매업체와 이를 판매하는 소매업체로 시장이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정부가 나서 인위적으로 여행업을 도·소매업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지원하고 업계도 자율적으로 도·소매업으로 재편을 시도한다면 장기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

▽투자 포인트〓여행업체 가운데는 증시에 상장된 회사도 별로 없지만 빠른 시간 안에 상장될 것 같은 회사도 없다. 워낙 영세해 여행산업의 미래만 믿고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여행상품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도매업체 하나투어와 자회사로 문막, 서산, 충주휴게소 등 3개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태경산업 정도가 투자 유망종목으로 꼽힌다. 두 회사 모두 우수한 재무구조와 안정적인 실적을 자랑한다는 평가.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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