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기간 부족과 주민 의견 반영 부족〓이번 강북 개발계획은 7월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취임 이후 3개월여간의 준비 결과 나온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서둘러 강북의 도시 구조를 재편하는 개발계획을 입안하다 보니 시민 공청회 같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빠졌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개발을 진행하는 데는 세입자 문제나 주민 이주 문제 등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있는데 시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강북 개발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개발이 주변 지역에 미칠 파급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한 이후에 개발계획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자칫 ‘계획적인 난개발’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주택공사 도시개발사업단의 유상오(兪常.) 연구부장은 “지금부터라도 주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수시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정서를 반영하는 쪽으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金炫我) 책임연구원은 “뉴타운 시범지역과 주변 미개발 지역의 불균형 문제 등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공사 기간의 부족〓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왕십리 뉴타운(9만8000평)의 경우 2003년 6월 개발에 들어가 1지구는 2005년까지, 2지구는 2006년까지 개발이 완료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개발 기간이 짧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상오 부장은 “주택공사가 진행하는 도시 개발도 통상 5년 정도 걸리는데 내년 여름 착공해 2005, 2006년 마무리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면서 “토지 수용과정에서 보상가 등을 놓고 주민과 마찰이 생기는 등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아 이 기간 안에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주민의 이주 혼란과 전세 대란 우려〓공사 기간에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이주 문제도 해결 과제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주민 이주가 시작된다. 이주 대상은 길음 뉴타운 1만3000여가구, 왕십리 뉴타운 4000여가구, 은평 뉴타운 8000여가구. 이주는 대체로 전세 입주가 될 것이다.
김현아 연구원은 “한 가구가 이사하면 두세 가구 이상이 동시에 이사를 해야 한다”면서 “과연 이들을 수용할 만한 주택이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엔 입주 물량이 여유가 있지만 2004년엔 입주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전세금 인상 등 전세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뉴타운 인근의 교통 문제〓교통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은 사항. LG경제연구원의 김성식(金聖植) 연구위원은 “지금까지의 재개발 단지에서 드러나듯 단지 안의 교통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밖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교통지옥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특히 “길음 지역은 뉴타운 예정지 주변의 도로를 확충하기가 거의 어려워 보이는 지역”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시는 뉴타운별로 보조간선도로를 확장 또는 신설하고 서울 동부간선도로를 확장하며 길음 뉴타운 인근의 상습정체구역인 미아사거리 교차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강북 뉴타운을 자연친화적 또는 중저밀도로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당초 의도와 달리 고밀도 개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협성대 도시공학과 이재준(李在浚) 교수는 “신시가지형 은평 뉴타운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국민임대주택 조성을 이유로 150∼200%의 용적률이 적용되면 중·고밀도로 개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일반적으로 개발제한구역 해제 지역은 2층까지 건축이 가능한 1종 전용주거지역이나 4층 이하 건축이 가능한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가 정해지는 것이 원칙인데 은평 뉴타운은 예외적인 경우가 되는 만큼 중·고밀 개발을 막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특성에 대한 고민 부족〓서울시는 은평 뉴타운은 신시가지형으로, 길음 뉴타운은 주거중심형, 왕십리 뉴타운은 도심형으로 각각 특성을 살려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개발 과정에서 문화 교육 인프라 구축에 역점을 둬 각 뉴타운을 차별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과연 주거중심형과 도심형이 어떤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상오 부장은 “서울시가 천편일률적으로 집과 상가를 짓고 도로를 건설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면서 “상업 교통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문화 교육 인프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어떻게 선정됐나▼
서울 성북구 길음동 정릉동, 성동구 상왕십리동, 은평구 진관내·외동 구파발동 등 3곳이 강북개발 뉴타운 시범단지로 선정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거론됐던 후보지는 도심인접지역에서 성동구 상·하왕십리동 옥수동 금호동, 중구 신당동, 마포구 공덕동, 중간 주거지역에서 성북구 돈암동 길음동 정릉 동소문동, 서대문구 북가좌동, 외곽지역에서 은평구 진관내·외동 구파발동, 도봉구 창동 등이었다.
서울시가 밝힌 선정 기준은 △개발이 시급할 만큼 노후 주거지가 밀집한 저개발 지역인가 △도심인접 외곽 중간지역으로서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가 △공영방식과 민간개발 등 다양한 도시개발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지역인가 등이다.
도심인접지역에서 상왕십리동이 선정된 것은 청계천 복원개발 사업의 덕을 본 사례. 서울시는 현재 추진 중인 청계천 복원사업과 강북개발을 연계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청계천에서 거리상으로 떨어진 마포구 공덕동이나 성동구 옥수동 금호동은 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 주거지역 후보지에서 길음동, 정릉동이 선정된 사유는 다소 역설적이다. 길음동은 노후불량주택이 많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지역에 비해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
주택만 놓고 보면 주거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다. 하지만 재개발이 마무리될 경우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이 절대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 때문에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곽지역인 은평구는 나대지가 많고 노후주택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예정지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은평구 관계자는 “개발 시범단지로 선정해 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그린벨트 해제 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이 전략상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앞으로 강북지역과 동작구 구로구 금천구 등지에서 20여곳을 선정해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뉴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내년 초 뉴타운 후보지 4, 5곳을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강북 뉴타운 3개 시범지역 개발 일정(2003∼2010년)
△길음 뉴타운(주거중심형)
-2006년까지 도로 공원 등 도 시기반시설 완료
-2008년까지 개발 최종 완료
△왕십리 뉴타운(도심형)
-2005년까지 1지구 개발 완료
-2006년까지 2, 3지구 개발
최종 완료
△은평 뉴타운(신시가지형)
-2006년까지 1지구 개발 완료
-2010년 2∼5지구 최종 개발 완료
●향후 뉴타운 개발 10개년 계획 일정(2004∼2012년)
△주거중심형 뉴타운
-2012년까지 단계별로 21개
지역에 개발
△도심형 뉴타운
-2012년까지 4대문안 및 인접 도심지역에 개발
△신시가지형 뉴타운
-2012년까지 4대권역(동북권 역, 서북권역, 동남권역,
서남권역)에 3곳 개발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선진국에선…▼
선진국은 지역 재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도시 전체가 나아갈 종합적인 밑그림과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개별 재개발사업을 수립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전문가의 검증과 지역 주민의 여론 수렴을 위해 최소 3, 4년의 준비기간을 거침으로써 난개발을 막고 재개발의 후유증을 최소화한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미국 연방정부는 자치단체의 재개발사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시가 마련한 재개발계획이 도시 전체의 개발계획과 어긋나는 등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보조금을 한푼도 주지 않는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개발계획을 충분히 검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졸속 행정이 미연에 방지된다”고 말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시 도심에 위치한 세인트로렌스 재개발지구는 개발 준비를 잘한 사례로 꼽힌다. 1960년대 이후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화돼 70년대 초반부터 재개발을 시작한 이 지역은 기본 계획을 만드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임창복(任昌福) 교수는 “도시 재개발사업을 단시간에 시행하면 시행착오가 따르게 마련”이라며 “이번 강북 재개발사업은 공청회 한 번 거치지 않고 발표돼 개발 계획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을 구상할 때 지역 주민의 여론을 심도 있게 반영하는 것도 선진국 재개발의 또 다른 특징이다.
지난해 끝난 일본 오사카(大阪)의 구 제철공장 부지 재개발사업은 지역 주민들이 공원 녹지 등 쾌적한 환경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을 요구해 당초 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려던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협성대 도시공학과 이재준(李在浚) 교수는 “주민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지만 개발 후유증을 최소화해 오히려 개발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불량 노후주택을 헐고 아파트를 새로 짓는 ‘물리적 환경개선’에 치중하는 한국과는 달리 선진국은 주민의 자활능력을 높이는 지역사회개발 프로그램인 ‘사회 경제적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70년대 중반 이후 뉴욕시의 할렘을 비롯해 디트로이트시, 클리블랜드시 등 대도시의 슬럼가에 직업훈련센터, 마약중독자 상담소, 자퇴학생 상담소 등을 마련해 주민의 생활안정과 주거환경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