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동북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인 한국과 중국 일본이 손을 맞잡고 공동 번영의 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NAIS Korea)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한 한중일 지식인 4명이 24일 오후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좌담회를 갖고 정치, 경제학적 측면에서 그 실현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좌담회는 박제훈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 사무총장 사회로 진행됐다.》
▽박제훈 사무총장〓1990년대 들어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지역 경제공동체가 잇따라 출범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만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센가 시게요시 교수〓동북아 공동체에 대한 일본의 대표적인 시각을 먼저 소개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다카다 야스마(高田保馬) 교토대 교수는 중일(中日)전쟁을 일본이 아시아인을 위해 벌인 전쟁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미래사회가 국가간 장벽이 없는 글로벌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일본이 유럽 미국 등 백인연합에 대항하는 아시아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카다 교수의 제자였던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는 중일전쟁이 아시아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의식 때문에 비롯됐다고 비난했다. 이로 인해 생긴 반일 감정이 동북아 공동체 결성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도 동북아 각국이 공통의 문화를 갖고 있는 만큼 공동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심각한 불황에 빠진 일본은 위기 탈출을 위해서라도 동북아 공동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원 교수〓확실히 일본이 아시아를 보는 시각에는 단절적인 의미가 강한 것 같다. 일본과 아시아를 분리해 생각한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이나 한국도 아시아에 대한 지역 정체성이 약하지만 일본은 이와도 좀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최근 아시아를 얘기할 때마다 중국과 북한 위험론을 제기하고 있어 대립적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센가〓물론 그런 면이 있다. 나는 동북아 공동체 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연대를 강화하면 오히려 민족주의와 반 외국인 감정이 강해질 수도 있다. 동북아 공동체는 열린 지역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장샤오지 박사〓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 보자. 흔히 중국이 제조업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한국과 일본이 가는 길에 중국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가면 특히 조선 철강 화학 분야에서 과잉생산에 따른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 동북아도 역내시장을 이용해 산업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중국과 한국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 분야의 성공을 다른 산업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물론 기업의 힘만으론 안 된다. 정부가 좋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FTA나 정부간 협의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류가 잦아지면 서로의 정책방향을 이해할 것이고 5년, 10년 이내에 진정한 동북아공동체가 출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세계는 유럽 북미 동북아 3개 지역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동북아는 여전히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일본에서는 중국과 북한 위험론이 여전한 데다 각국간 안전보장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북한 미국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6자 회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의 틀을 떠나 시민단체들간의 협력이 실질적인 평화 분위기 조성에 중요하다.
▽박〓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과 북한에 대한 생각은 학자간, 국가간 입장이 다르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미국의 군사이익을 확보해주되 경제적인 측면에선 미국을 배제했던 EU처럼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생각하자는 의견이 있다. 반대로 처음부터 미국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문제는 좀 더 논의해야 할 것이다.
북한문제는 처음부터 다자간 협력에 끌어들여 머리를 맞대야 핵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통일에 바람직하다. 북한을 장애물로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장〓한중일 3개국간 역내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다. 3개국 모두 미국시장만 바라보고 경쟁하고 있는데 역내 시장을 키우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이〓그러기 위해선 동북아 공동체의 기초부터 서둘러야 한다. EU도 50년대 독일-프랑스 철강석탄공동체에서 비롯됐다. FTA를 하면 좋은데 정치가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농민층에 기반을 둔 일본 자민당은 경제적 이점을 알면서도 FTA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분위기를 조성하는 ‘보텀업(Bottom Up)’ 접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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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 국제콘퍼런스 토론내용▼
“동북아 공동체,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무르익었다. 남은 과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화 채널이다.”
한중일 각계 전문가 55명이 참가한 가운데 동북아공동체 실현전략을 모색하는 대규모 국제 콘퍼런스가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무역센터에서 열렸다. 26일에는 인천 송도비치호텔로 자리를 옮겨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인천의 역할’에 대해 논의를 이어간다.
인천광역시·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NAIS Korea)·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동북아공동체 실현을 위한 국내외 과제와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대규모 국제 콘퍼런스.
한국국제경제정책연구소 이창재(李昌在) 소장은 첫 주제발표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은 세계경제의 5분의 1, 동아시아 경제의 90%를 차지하는 경제집단으로 동아시아 및 동북아시아 경제통합을 이끌어야 한다”며 “우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학계 경제인 정부관계자 등 세 분야 대표가 참가하는 대화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박성훈(朴成勳) 교수는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역내무역집중도가 40∼45% 수준으로 60년대 초반 유럽통합 초기의 역내무역집중도인 45% 수준과 비슷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선 공동체 창설을 위한 전제 조건이 갖춰진 셈”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그는 “전쟁과 식민지 기억을 극복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공동체 창설을 이끌 주도 세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본 와세다대 다가 히데토시(多賀秀敏) 교수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소수 정치 엘리트들의 주도로 추진하면 부작용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정부기구(NGO)나 자치단체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국제시민포럼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각국의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참여하는 다층적인 ‘동북아 시민포럼’을 만들되 본부는 한반도 휴전선 내에 세우고 나머지 하나는 황해에, 또 하나는 동해에 세우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수량기술경제학연구소 류하이보(劉海波) 연구위원은 “국제경제협력은 무엇보다 정책협력”이라며 “정책협력을 통해 협력사업 및 그 밖의 협력을 위한 기반과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갖가지 다른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이날 콘퍼런스는 동북아공동체 창설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란▼
지난해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3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한중 경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측 참석자들은 한중일 3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경제협력체 창설을 제의했고 이후 재계를 중심으로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설립, 동북아 철강공동체 발족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NAIS Korea)’가 국내 각 분야 학자 333명이 회원으로 참가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발족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동북아공동체론에 대한 실천방안과 해답을 민간 지식인들이 나서 찾아보자는 취지다. 아울러 동북아 국가간 이해 증진과 협력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 ‘동북아공동체’ 실현을 위해 지식인들의 구심체가 필요하기도 했다.
NAIS Korea는 결성 직후 첫 사업으로 지난해 11월 인천국제공항 개항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열어 동북아지식인연대의 국제적인 조직 결성을 시작하는 ‘2001인천선언’을 선포했다.
지난해 모임이 선언적인 의미였다면 올해 콘퍼런스는 동북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 특히 올해는 학자뿐만 아니라 관련국 대사, 정부 부처, 업계가 참석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