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은행감독 직무유기

  • 입력 2002년 10월 30일 18시 55분


제일은행 최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이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해명자료를 내자 금융전문가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감원측 해명의 뼈대는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 홀딩스 Ltd’가 승인 당시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므로 한국정부에 주주변동 사항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것.

금감원의 해명은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이 3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 문구 하나 다르지 않고 일치한다.

그러나 올해 4월 은행법 개정작업에 참여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주주’의 정의에 대해“금융기관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대주주로 규정한다”면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제일은행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브리지펀드의 대주주인 텍사스퍼시픽은 은행법에 규정된 대주주이므로 텍사스퍼시픽의 지분변동 사항은 감독당국에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일은행의 지분구조에 대해 정통한 금융관계자는 제일은행을 지배하는 펀드의 지분구조와 관련해 “텍사스퍼시픽이 블럼캐피털파트너스와 소프트방크의 지분을 사들여 현재 텍사스퍼시픽의 지분은 80%에 이르는 사실을 올 8월에 확인했다”고 알려왔다.

한국 정부도 모르는 사이에 제일은행 경영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가 바뀌고 있었던 셈이다. 뉴브리지의 대주주인 텍사스퍼시픽은 제일은행의 사실상 대주주로서 은행법 15조에 규정된 지분변동 보고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은행법을 개정한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뉴브리지의 산하펀드가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제일은행 소유권을 넘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현행법을 문구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텍사스퍼시픽은 지분변동 사항을 한국정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일은행 노조는 올해 여름 미국 뉴욕 소재 텍사스퍼시픽 사무실을 방문해 합병 등 경영사항에 대한 대주주의 입장을 들은 바 있다.

여러 금융전문가들은 금감원이 ‘은행법 위반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근거가 박약할 뿐만 아니라 감독부재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김용기기자 ykim@donga.com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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