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실수의 합작품' 디씨씨 사흘째 상한가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7시 55분


정보가 모든 투자자에게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전달된다면 주가는 예측이 불가능하며 항상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버튼 멜키엘 교수가 주장한 유명한 랜덤 워크(Random Walk) 이론이다.

그런데 한국 증시에서는 이런 이론을 당분간 적용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보가 공평하고 효율적이기는커녕 뭐가 정보인지 개념조차 혼란스럽게 만드는 엉뚱한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

최근 해프닝의 주인공은 사흘째 상한가로 기세를 올린 디씨씨. 상한가의 재료가 황당하게도 무려 8개월 전에 발표된 인수합병이다.

▽어처구니없는 주가 상승〓디씨씨 주가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7일. 현대백화점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종합유선방송업체인 디씨씨(옛 한국케이블TV 동작방송)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퍼진 게 발단이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사실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백화점은 이미 올해 3월 디씨씨를 인수했기 때문. 현대백화점이 최근 기업분할을 하면서 디씨씨 지분을 신설법인(현대H&S)에 넘기는 과정에서 엉뚱한 소문이 잘못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7일 증권거래소가 현대백화점에 “디씨씨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밝혀라”고 조회 공시를 요구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했으니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주가가 급등했고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황당한 현대백화점은 공시를 통해 “이미 3월에 공시한 것처럼 오래 전에 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미 ‘인수합병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었다.

▽투기세력의 합작품〓11일에는 “디씨씨 인수합병은 이미 8개월 전 완료된 구닥다리 재료”라는 바른 지적이 나왔지만 불붙은 투기의 광풍은 꺾일 줄 몰랐다. 언젠가 주가가 폭락할 게 뻔한 상황인데도 ‘일단 올라타고 보자’는 투기세력의 매수가 디씨씨를 사흘째 상한가로 끌어올렸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본적인 사항도 확인하지 않고 조회공시를 요구하는 증권거래소와 주가가 오르면 무조건 달라붙는 투기세력이 만든 합작품”이라며 “한국증시 수준을 보여주는 해프닝”이라고 말했다.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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