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SLK 모델의 지면광고는 1997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광고는 벤츠의 최고급 2인승 오픈카의 런칭(Launching) 광고라는 점을 고려할 때 너무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광고제작자는 당시 판매가 4만5000달러(약 5468만원)짜리 SLK를 왼편으로 몰아버리고 오히려 난데없이 ‘스키드 마크(Skid Mark·급정거 타이어 자국)’를 지면 한가운데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세계 광고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 스키드 마크였다.
스키드 마크에 시선을 고정하는 순간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뿐만이 아니라 귀로도 광고를 느끼게 된다.
‘끽∼끽∼’ 하는 급정거 소리, “와!, 멋있는데”라는 운전자들의 탄성, “여보, 앞을 보고 운전해요!”라는 부인들의 타박하는 소리가 어느새 귓가를 맴돈다. 이어 SLK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표정과 소곤거리는 모습도 떠오른다.
지면광고가 소비자들의 머릿속에서 라디오 광고로, 또 TV광고로 바뀌는 순간이다.
광고제작자는 자동차와 소유욕이라는 흔하디흔한 소재를 ‘크리에이티브 화법(話法)의 새로움’으로 극복했다.
‘SLK가 좋다’는 말을 벤츠나 광고사로부터가 아니라 독자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사람들에게서 듣도록 한 것이다.
광고의 일방적인 외침을 배제하고 소비자들을 광고 속으로 끌어들였다.
또 소비자에게 ‘즐거운 상상의 여백’을 만들어주기 위해 SLK의 멋진 사진과 성능 정보를 과감히 포기했다.
이처럼 광고와 소비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형성시키고 나아가 이를 더 남다르게 차별화하는 광고는 이미 선진국에선 비일비재하다.
최근 국내 광고사들이 국제광고제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도 광고 화법의 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찰스 왕세자를 빅모델로 등장시켜 SLK를 칭찬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저 스키드 마크 중에는 찰스 왕세자가 탄 승용차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한 그 ‘착상의 전환’이 국내 광고제작자들에게도 필요하다.
안해익·제일기획 제작본부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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