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제도가 시행된 이후 기업들의 첫 실적 발표가 15일로 끝났다.
애초 증권가에서는 공정공시를 시작하면 실적 발표 당일에 기업 주가가 크게 출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적이 미리 새지 않았다면 발표 당일과 그 이후 주가에 반영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적을 미리 알아채고 실적 발표 전에 주식을 사거나 파는 큰손들의 횡포도 많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결과는 어떨까. 공정공시 이전과 이후에 각각 실적을 발표한 국민은행과 휴맥스의 주가 흐름이 그 해답의 단면을 보여준다. 공정공시가 나름대로 증시정보 흐름을 공평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정공시 이전, 국민은행〓국민은행의 3·4분기(7∼9월) 실적은 ‘쇼크’라고 불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전 분기에 비해 순이익이 무려 30% 가까이 줄었고 3·4분기까지 누적 순이익과 충당금 적립 전 이익도 모두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가 움직임이 이상했다. 이 회사는 공정공시 실시 전인 지난달 24일 밤 실적을 발표했다. 정상적이라면 악화된 실적은 25일부터 주가에 반영돼야 했다. 그러나 국민은행 주가는 25일 3% 하락했지만 다음 거래일인 28일부터는 큰 폭으로 반등했다.
오히려 주가가 폭락한 것은 실적발표 며칠 전인 21, 22일이었다. 이 이틀 동안 외국인투자자가 집중적으로 팔아치우는 바람에 주가가 10% 가까이 폭락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국민은행 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악화됐다는 사실이 큰손한테는 다 알려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국민은행 실적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었던 개인투자자만 손해를 본 셈이다.
▽공정공시 이후, 휴맥스〓분기별로 실적을 발표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매달 실적을 미리 발표해 좋은 평가를 받는 휴맥스는 10월 결산 실적을 15일 발표했다.
코스닥 우량주로 나름대로 주가가 무거운 편인 휴맥스는 이날 하루 동안 주가가 무려 9.14%나 폭등했다. 10월까지 누적순익이 지난해보다 21% 좋아졌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올해 하반기 감소추세이던 매출과 이익이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판단 덕분이었다.
공정공시로 실적이 미리 새나가지 않아 실적 정보가 모든 투자자에게 공평하게 전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든 투자자가 같은 시각에 휴맥스 실적을 알았고 투자 판단도 비슷하게 이뤄져 15일 주가가 급등했다는 해석이다.
동양종합금융 최현재 연구원은 “공정공시가 실시되면서 공개된 정보만 알 수 있었던 개인투자자에게 유리한 투자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