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환율과 연계한 ‘환매차익채권’ 등 파생금융상품 매매를 통해 고의적으로 손실을 발생시켜 세금을 탈루하는 은행 및 기업이 국세청으로부터 중점 세무관리를 받는다.
이진학(李鎭鶴)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국제거래나 해외투자 312건을 조사, 탈루 세금 4233억원을 추징했다”며 “이 가운데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한 신종 탈루 수법 비중이 23%나 되는 등 기승을 부리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기발한 신종 탈루 수법〓이번에 적발된 A다국적 은행은 97년 11월 세율이 낮은 말레이시아 등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차린 뒤 환율이 폭락한 동남아시아 지역 6개국의 환율(달러 대비)에 따라 손익이 나는 옵션 채권(2억달러)을 발행하게 했다. 이 은행은 페이퍼 컴퍼니로부터 이 채권을 사들여 서울지점에 팔았고, 서울지점은 이 채권을 중도에 같은 은행 동남아 지역 지점에 다시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환율 하락에 따른 매각 손실 1억달러를 발생시켜 서울지점의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가 600억원을 추징당했다.
한상률(韓相律) 국세청 국제조사담당관은 “같은 은행의 지점끼리 교묘하게 거래 관계를 만들어 실질적인 손실없이 법인세만 탈세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탈루 수법도 여전〓한국에 자회사를 둔 다국적 기업인 B사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케이스. B사는 국내 자회사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로 150억원을 받았지만 이자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이자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한-아일랜드 조세협약’을 악용,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린 다음 그 명의로 국내 자회사에 돈을 빌려줬기 때문.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아일랜드 페이퍼 컴퍼니에서 대출 절차를 변칙 처리한 것이 드러나 적발됐다.
▽향후 단속 방향은〓국세청은 국제거래를 이용한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국가간 세무 관련 정보 교환을 활성화하고 외환자료와 세무신고자료 등을 연계한 ‘탈세혐의 분석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또 국제거래가 많은 법인에 대해서는 정기 세무조사 때 국제거래 부분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