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는 한 언론매체의 보도내용과 관련해 “지금처럼 예민한 시기에 이런 기사가 나가도록 하느냐”고 따졌다. A씨는 “우리가 발표한 내용이 아니고 그런 방침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각 경제부처는 한국경제의 ‘그늘’과 관련된 부분이나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정책이 보도되지 않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 조금이라도 비판적 기사가 언론에 나오면 실체적 진실과 관계 없이 일단 부인한다. 반면 ‘정부여당’에 도움이 될 내용이면 적극 홍보에 나선다.
개인 워크아웃 대상 확대 발표를 둘러싼 최근의 파문은 좀더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
민주당이 “정부와 합의했다”며 발표하자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합의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금감위에서는 “민주당이 정부방침을 가로채 생색을 내는 바람에 우리만 덮어썼다”며 볼멘 표정을 짓는다.
한국에서는 선거 때마다 자주 관권(官權) 개입 시비가 일었다. 옛날에는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로 상징되는 금품 살포와 군대에서의 공개투표 강요가 대표적이었다.
이런 방식이 안 통하면서 기승을 부린 것이 선심성 정책의 남발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0년 4·13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얼마나 많은 달콤한 공약을 쏟아냈던가. 이때 뱉어낸 정책 중 상당수는 두고두고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여당의 은밀한 거래’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중립 내각을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워크아웃 발표 파문 후 박선숙(朴仙淑)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대통령과 정부는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불법과 탈법선거에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민주당은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
현 정권의 여당이었음을 최대한 숨기려고 애쓰는 민주당은 어떤 경로로 이 정책을 입수해 무슨 자격으로 발표했는가. 관련 정부부처는 특정정당과 사전조율하지 않았다면 뒤늦게 왜 이를 ‘추인’했는가. 청와대는 월권으로 선심성 정책을 발표한 민주당과 정보를 흘려준 공무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와 정당을 지지(또는 거부)할 것인가는 각자 판단하고 선택할 문제다. 선거의 성격을 둘러싸고도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확신의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자유롭기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 특정 정당의 당비(黨費)가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기관과 공무원을 선거운동에 물밑 동원하는 것만은 용납해서 안 된다. 이런 구태(舊態)를 뿌리뽑지 않는 한 아무리 ‘새 정치’를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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