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8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삼성화재빌딩 21층 사무실에 도착한 김 부장은 여느 때처럼 신문을 펼쳐 들었다. 보험관련 기사를 찾아내 밑줄까지 그어가며 꼼꼼히 읽는데 30분이 걸렸다.
요즘 관심사는 그가 인수업무를 맡은 리젠트화재. 김 부장은 인수업무의 핵심인 리젠트화재의 가치 평가를 책임지고 있다.
곧이어 열린 회의는 오전 내내 이어졌다. 점심 후 보험 신상품 검토를 시작했다. 수시로 인터넷을 통해 리젠트화재 관련 소식도 챙겼다. 저녁 7시경 컴퓨터를 끄는 것으로 일과는 끝났다. 대표 계리인으로서 회사의 주요 업무에 모두 관여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가 매일 이어진다.
퇴근 후 회사근처 식당에서 부하 직원들과 저녁 회식이 가졌다. 김 부장은 “보험회사에서 계리인 자격증은 필수”라며 “시간 있을 때 준비해서 따놓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직원 K씨가 김 부장을 자극했다.
“부장님, 아무래도 미국 계리인 자격증도 따놔야 할 것 같아요. 보험회사도 어차피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니까요.”
미국 보험계리인 자격증은 미국내 자격증 인기도 2위. 일단 따 놓으면 전 세계에서 통한다.
밤 10시경 회식을 마치고 전철로 귀가하면서 김 부장은 미국 계리인 자격증 취득에 대해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제 나이도 든 만큼 자신의 몫은 후배들이 대신 미국 계리인 자격증을 따도록 독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89년 보험계리인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직속 상사는 그에게 계리인 자격증을 따라고 볶아댔다. 하지만 준비가 부실해 첫해에는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성균관대 수학과(76학번) 출신인 그는 대학시절 공부했던 수학과 통계학 서적을 다시 펼쳐 들었다.
결국 91년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합격의 보상은 자격수당이었지만 진짜 보상은 회사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됐다는 점. 보험회사는 계리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평가, 위험관리, 투자포트폴리오 결정, 부채 및 자산 리스크 관리, 준비금 적정성 평가 등 보험계리인의 업무는 수없이 많다. 보험계리인이 없다면 적정 보험료율 산정도 불가능하다.
회사 대표 계리인으로 36명의 계리인을 총괄하는 그는 94년 재경부장관 표창, 2000년 금융감독원장 표창을 받았다.
김 부장은 “보험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며 “계약자 보호와 이익 분배에도 적극 참여한다”고 말했다.
보험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업무도 늘고 있다. 그래서 보험계리인은 늘 모자란 상태다. 연간 시험합격자수는 50명.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향후 5년 간 유망직종 가운데 보험계리인을 5위로 추천했다.
김 부장은 “요즘 보험계리인 합격자는 보험회사직원 50%, 학생 50%”라며 “자격증을 따면 취직은 100% 보장”이라고 말했다. 굳이 보험회사가 아니라도 독립 계리인으로 활동할 수도 있고 회계법인에 갈 수도 있다. 꼼꼼한 성격의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리는 자격증이라는 게 김부장의 얘기.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자격증 따려면▼
보험계리인(Actuary)이란 수학적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여 보험회사 경영과 관련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일을 담당한다.
보험은 장래의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는 금융상품이다.
따라서 보험상품 개발에서 미래의 경영위험 예측과 결산업무에 이르기까지 수리적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계산과 분석은 보험회사 경영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보험회사의 리스크 관리와 재무관리에서 보험계리인의 역할은 점차 중요해질 뿐 아니라 금융산업이 발전할수록 보험회사 외부에서도 수요가 많아지는 추세다.
보험계리인 시험은 보험개발원에서 시행한다. 연 1회 실시하며 1차 시험은 5월 중순, 2차 시험은 8월말경 치른다.
응시자격에 연령 학력 경력 등의 제한이 없으므로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다만, 시험과목 가운데 보험수학, 보험수리 등이 있기 때문에 수학에 자신이 있거나 대학에서 통계학이나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수험준비에 다소 유리하다.
1차 및 2차 시험에 합격하면 자격을 취득한다. 1차 시험은 객관식이며 과목별 40점 이상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된다. 2차 시험은 주관식으로 치러지며 과목별 40점 이상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되나, 합격자가 적게 나올 것에 대비해 시험시행 공고시 최소선발 예정인원을 함께 공고하고 있다.
1차 시험과목은 △보험계약법 △보험업법 △보험수학 △경제학원론 및 경영학 원론 중 택일 △외국어(영어 및 일어 중 택일) 등 5과목이다. 2차 시험과목은 보험이론 및 실무, 회계학, 보험수리 등 3목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6개월 간 보험회사 등에서 실무수습을 받아야 하며, 실무수습이 끝나면 금융감독원에 보험계리인 등록을 신청할 수 있다.
보험계리인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대학졸업자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최상위권에 드는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이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로 국내에서도 보험계리인의 역할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대우와 위상도 함께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상래(한국 보험 계리인회 사무국장, 보험개발원 기획관리본부장)
박상래 한국보험 계리인회 사무국장 보험개발원 기획관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