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항상 긴장됩니다. 무의식중에 회사 경영과 관련된 사항을 얘기했다가 공정공시제도에 걸려 제재를 받을지도 모르니까요.”(팬택 김주성 기획홍보실 차장)
11월1일부터 공정공시제도가 도입된 뒤 증시의 정보 흐름이 바뀌고 있다. 회사 임직원이 무심코 한 얘기나 신문 사보 등에 기고할 내용도 모두 공시하도록 규정해 회사에선 함구령이 내려졌다.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찾아가 정보를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메신저’를 통해 전파되는 루머도 줄어들고 있다.
공정공시란 기업정보가 기관투자가나애널리스트에게 먼저 제공돼 일반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 아직 도입 초기여서 공정공시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민감한 사안은 공시를 꺼리고, 기업의 홍보성 공시는 봇물을 이루고 있다.
애널리스트의복지부동을 초래하고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도 공정공시 도입을 강행한 것은 올 들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진 사건 사고 때문. 올 8월23일 대우증권에서 현대투자신탁운용의 계좌를 도용해 델타정보통신 주식 250억원어치가 불법으로 거래되는 일이 일어났다. 11월초에는 알에프로직의 매출조작 사건이, 12월초에는 1조8000억원대의 주금 가장납입 사건도 일어났다.
당국이 공정공시로 이런 불공정행위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또 작전을 벌인 일부 증권사 점포를 폐쇄하고 영업을 정지시켰다. 부실기업은 증시에서 퇴출시켜 불공정거래가 아예 이뤄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올해 상장이나 등록이 취소된 기업은 43개(거래소 29개, 코스닥 14개). 작년의 21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내년에는 부도나거나 자본이 전액 잠식되는 회사, 그리고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한 기업은 즉시 퇴출된다. 현재 기준으로 약 41개사가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
공정공시와 부실기업 퇴출 및 불공정거래 감시강화라는 ‘3각편대’로 증시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주가가 제 값어치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셈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